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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 국민에게 노벨평화상을 준다면

[LA중앙일보] 발행 2014/07/08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7/07 22:21

구혜영/사회부 기자

기분이 이상했다. 암울한 적갈색 문을 열자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생기 없는 눈, 흘러내린 살, 숟가락 쥘 힘이 없어 조그맣게 벌린 입…. 지난달 25일, 웨스트LA 향군병원 215동에서 만난 참전용사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 바싹 마른 두부 같았다.

그들은 64년 전 한국전쟁에서 입은 부상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클리퍼드 스네이더(84)씨는 "나무 앞에서 전기충격을 13번이나 받았어"란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그것밖에 없는 탓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를 맞아줄 가족은 없었다. 함께 참전한 쌍둥이 형은 한국땅 어딘가에서 전사했고, 병원에 갇힌 이후 평생 결혼할 여자 하나 만나지 못했다.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가 인지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루스벨트 페이셔(86)씨는 목소리를 잃었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한때 재즈가수를 꿈꿨던 그는 이제 침을 흘리며, 누군가가 음식을 입 안에 넣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한 소셜워커는 "가끔 전쟁이야기가 나와도 다들 우스꽝스러운 농담만 하고 넘어간다. 분명 기억하고 싶지 않아, 의식적으로 지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전쟁용으로 헌법해석을 바꿨다. 이제 일본은 자신이 공격당했을 때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무력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 결정은 '총리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해진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무력 공격을 당했을 때 보복할 수 있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소름끼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다행인 것은 일본 내 분위기다. 아베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 이후,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곳곳에선 위헌 소송이 벌어지고,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48%) 급락하고 있다. 여기에 '평화헌법 9조'를 지켜온 일본 국민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자는 서명운동이 빛을 보고 있다.

지난달 28일까지 모인 서명은 총 11만3219개. 지난 4월, 노벨위원회에 공식접수된 이 안은 유명 정치인이 아니라, 30대 주부가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전쟁하는 국가를 물려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평화헌법 9조에는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기돼있다.

21세기 오늘, 갖다 붙이면 '말 되는' 명분은 수없이 많다. 휴전중인 나라에 태어나, 매년 '북한 단거리 로켓 발사' 같은 헤드라인 뉴스를 들어온 사람으로서 전쟁이 없어질 거란 이상주의적 희망은 품지않는다.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고, 국가 사이에 영원한 우방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을 없애려는 노력은 무조건 해야한다고 믿는다. 이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기억하는 삶이란 이름의 약속이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 죽어줘도 되는 인생은 없다. 오는 10월 10일, 2014년 노벨평화상은 꼭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 국민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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