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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옐로 저널리즘에 휘둘린 한국

[LA중앙일보] 발행 2014/07/09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7/08 21:38

모니카 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옐로 저널리즘 (황색언론)'이 한국을 우롱하고 흔들었다. 얼마 전 총리로 지명되었던 문창극씨에 대한 '미디어 사건'이 그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전문성을 잃은, 비윤리적으로 각색된 뉴스 처리를 '황색언론'이라고 부른다. '옐로 저널리즘' 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19세기 말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는 셈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들- 퓰리처 상의 주인공 퓰리처와 관광지 허스트 캐슬의 주인이었던 허스트 사이의 이득권 싸움 때문에 생긴 단어라고 보면 된다.

퓰리처가 갖고 있던 '뉴욕월드'와 허스트가 퓰리처의 동생 앨버트에게서 사들인 '뉴욕저널'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판매부수 경쟁이 옐로 저널리즘의 시작이었다. 퓰리처는 17세에 헝가리에서 온 유대계 이민자였다. 직업군인으로 남북전쟁에도 참여했다.

당시 뉴욕월드는 한 부에 2센트였다. 평민들이 쉽게 읽고 계속적인 흥미를 갖도록 만든 신문이었다. 눈에 금방 띄는 큰 글씨로 대서특필하거나, 대중을 자극하는 정치적인 단어, 각색된 스캔들, 서슴지 않고 누군가를 후려치는 비판,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만화를 연재했다. 연재 만화 '호간의 뒷골목'은 컬러로 인쇄되었다. 낡은 노란 옷을 입은 주인공 '옐로 키드'가 잘 사는 아이들을 놀리거나 복수하는 식의 테마였다. 이 꼬마는 약간 더러워 보이고, 홈리스 또는 이민자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모습을 갖고 있었다.

퓰리처가 최다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을 때 허스트는 하버드대학 재학 중이었다. 하버드에서 쫓겨났지만 퓰리처의 신문 편집 재주에 감탄했던 그는 한때 퓰리처의 신문사에서 일했다고 전해진다.

허스트는 퓰리처의 괴팍한 성격에 불만을 가졌던 '옐로 키드' 만화가와 재주 있는 몇몇 편집자들을 빼내어 온다. 그리고 퓰리처 신문 값의 반, 단돈 1 센트로 신문값을 매겼다. 퓰리처의 '센세이셔널리즘'을 그대로 도입, 시시한 뉴스도 재미있게 만들었고, 뉴스가 없으면 아예 뉴스를 지어냈다. 그렇게 해서 '옐로 저널리즘' 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졌다.

옐로 저널리즘은 스페인-미국 전쟁 발발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언론은 허구적인 뉴스를 비이성적, 선정적인 방법으로 보도하여 스페인을 몰아붙였다. 마침 스페인의 식민지로 독립을 꿈꾸던 필리핀, 쿠바, 푸에리토 리코, 괌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미국은 새로운 프런티어가 필요했다. 애국심은 충동질 되었고 미국은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게된 것이다. 스페인, 영국에 이은 미국의 빅 브라더적인 제국주의 기반은 이때부터 모습을 갖추게 되고 쿠바, 푸에리토 리코, 괌,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게 된다.

나는 문창극씨를 모른다. 그러나 공정해야 할 뉴스를 교묘한 방법으로 짜깁기한 한국의 옐로 저널리즘, 그 내용을 검증하지도 않고 그대로 베껴 퍼 나른 매체들, 그리고 이때다 하고 편승한 모리배 정치인들을 생각할 때 성숙하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오래 이런 질병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옐로 저널리즘'의 놀이터를 허용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쇄신의 꿈을 실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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