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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탈북동포 돕는게 통일다리 놓는 것"

북한 1호 공훈배우 출신
주순영 선교사

LA평통 주최 간담회에 참석
"나도 재혼상대 찾아 봤지만
북한출신이라 딱지 맞았죠"


"북한으로 들어가서 하는 선교는 너무 위험해요. 그보다는 주변의 탈북 동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더욱 큰 선교가 될 수 있어요."

북한 1호 공훈배우로 잘 알려진 주순영(사진) 선교사가 지난 21일 LA한인타운 JJ그랜드호텔에서 민주평통 LA협의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탈북동포를 위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 선교사는 이날 평통 최재현 LA회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평통위원을 상대로 1호 공훈배우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던 북한에서 삶과 탈북 후 중국과 한국에서의 역경, 선교사로서 탈북동포들을 위해 살게 된 제2의 인생 등을 한 편의 '뮤지컬'로 펼쳐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시로 구성,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편으론 숙연하게 때론 슬그머니 미소짓게 하다가도 이내 눈물이 핑돌게 분위기를 휘몰아 갔다.



고등중학을 졸업하던 해 전국에서 '김일성 부인 김정숙 닮은꼴 찾기'에 발탁돼 배우로서의 삶을 살게 된 주 선교사는 평양호위사령부 협주단 군관소좌(소령)까지 진급하며 '선택된 삶'을 살았다. "북한에서 1호는 김일성과 그의 직계가족을 의미해요. 공훈배우라는 호칭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공연 때 김정숙의 역할을 잘 해내 김정일의 후계자 선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칭호죠. 그때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어요."

주 선교사의 인생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 사후 북한의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하면서부터다. 주 선교사는 1997년 중국 무역지도원으로 외화벌이에 동원됐고, 그 한 번의 외유길에서 탈북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숙소인 연변의 한 호텔 식당에서 주인의 소개로 우연히 노래를 하게 됐어요. '반갑습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휘파람' 등을 불러 많은 팁을 받았고, 배우 시절 들어 본 남조선 노래 '단골손님'까지 불렀어요.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실룩이며 춤도 췄어요. 북한에서라면 '수정주의 날라리풍', '미치광이들의 정신 광란증'으로 체포될 일이었지만 분위기에 취했어요. 인기도 정말 대단했지요. 여기서 한 번 들어 보실래요."(1958년 생으로 밝혔으니 50대 중반이지만 주 선교사의 목소리는 한 때 북한 최고 배우란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젊고 맑았다)

연변 식당에서의 바로 그 노래 공연이 발목을 잡았다. 3박4일의 일정 동안 기대 이상의 돈벌이를 했고,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남조선 노래 등으로 체포령이 내려졌다. 이후 주 선교사는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중국에서 탈북생활을 하며 중국 공안의 만행과 굶주려 죽어가는 동포들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한국행을 결행하게 된다.

"4번의 체포와 2번의 북송, 그리고 4번의 탈출을 하는 동안 기도하면 하느님이 늘 큰 도움을 주셨고,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설 수 있게 됐습니다."

주 선교사는 한국에서도 식당운영과 방송출연 등으로 제법 자리를 잡았지만 탈북동포 지원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자본주의 시스템 적응에 고전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뒤늦게 선교사 공부를 하면서 이제는 '통일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 선교사는 "북한은 김정은 세습체재를 둘러싼 특권층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을 것인 만큼 당장 남북 평화통일은 힘들 것"이라며 "선교도 직접 들어가서 하다가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지금은 차라리 주변의 탈북동포를 돕는 게 평화통일의 다리를 놓는 가장 좋은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동포는 북한을 나와 제3국을 떠돌면서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다. 그들이 안정을 찾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혼 적령기에 있다면 짝을 찾아줘 마음을 잡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주 선교사는 자신도 혼자이니 결혼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실제 재혼상대를 찾아 봤지만 '북한 출신'이라고 딱지를 맞았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탈북동포 한 사람이라도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해요. 그 사람이 본보기가 돼 다른 탈북동포도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물론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 때문에 탈북동포끼리도 험담하고 흔들고 하지만 미주 한인들이 사랑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면 통일의 길이 거기서부터 열리기 시작할 겁니다."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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