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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탐방기(4) 장정문 신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04/01/1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4/01/08 17:49

이미 아는것과 같이 알래스카는 땅의 크기가 미국에서 가장 넓지만 인구는 가장 적은 주이다. 과거에는 알래스카는 사람이 살기 어렵고 야생짐승들이나 서식하는 춥고 황량한 러시아의 국토였다. 1867년 러시아는 이 쓸모없는 북극권의 대지를 미국에 팔아버렸다.

그런데 이 야생과 설원의 황량한 땅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보고(寶庫)가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알래스카에는 금, 은, 동 등의 금속 지하자원도 많고 어업으로는 세계의 황금어장이 바로 알래스카 근해이다.

이에 더하여 근년에는 관광사업이 번창하여 그 수입이 대단하다. 최신형의 관광선과 관광시설로 인해 북미주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의 나라들과 멀리 서구에서까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상은 정치 및 경제적 발전에 대한 것이고 이 발전을 주도한 주역은 현대 서양인 백인들이다.

나는 알래스카를 또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본다. 현대문명 이전부터 있어 온 알래스카 대지와 그 원주민,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더 가까운 우리 동북아시아인의 입장에서다.

아득히 먼 유사 전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로 전해지고 또 어느 정도 과학적 추리나 고증이 도움이 된다. 알래스카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지금으로부터 1만5천년 내지 4만년 전에 시베리아에서 넘어온 동북아시아인들이고 이들 중 일부는 더 동으로 이동하여 북미주에 흩어졌다고 한다.

이 인디언들보다는 훨씬 뒤인 3천년 내지 8천년 전에 온 에스키모(Inuit)와 얼류트(Aleuts)족도 그 이주경로는 유사하다. 그 인디언족이나 에스키모족, 얼류트족이 얼마만큼 우리의 몽고계 인종과 가까운지는 간단히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들이 코가 크고 언어체계도 유사한 인도 유럽계(Indo-European) 인종이 아니고 우리 동북아 인종들과 유사한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한때 캐나다 인디언교회(Cree족)에서 시무한 적이 있고 또 나의 신학대학원 동창이고 친구인 Leroy Lyons 흑인사제의 부인이 북극 에스키모인이어서 인디언 에스키모들의 역사나 인종적 특징을 좀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하바로프스크에도 가 본 일이 있어 그곳 인종들의 특이한 모습이 연상된다. 에스키모는 인디언들보다 더 우리와 가까운 몽고계의 인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면 이들 인디언이 어떻게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올 수 있었는가. 지질학 및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아득히 먼 원시시대에는 지금의 베링해협이 바다 아닌 육지로 되어 있어서 그 동북아시아 원시인들이 알래스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학문적 가설이지만 수긍의 되는 이론이다. 나는 앵커리지의 다운타운 거리를 걸어가면서 얼류트 인종들을 보았고 얘기도 나누었다.

끝으로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 교포들의 현황을 살펴보자. 2003년 현재 알래스카의 한인교포 인구는 약 6천명으로 그 가운데 5천명이 앵커리지에 살고 있다. 그들의 사업이나 직업은 주로 음식점, 세탁소 등이고 페인트, 집 내부수리, 청소 등 하청일도 한다.

교포들이 모이는 한인교회는 앵커리지 시내에 2003년 여름 13개 정도라고 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7, 18개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가정교회들까지 계산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김광연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는 그리스도교 교단에 속해 있다는데 신자 수는 70∼80명 정도이고 교포교회들 가운데서 교세로 보아 중상 정도인 듯했다. 김광연 목사님은 앵커리지에서 특별히 노년들의 사회복지와 삶을 잘 도와주는 목회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교회 신자들 가운데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목사님 내외분은 나에게도 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 앵커리지에 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나의 신앙 나그네의 인생이 알래스카 땅에 오래 머물 수 있을까. 한 교포노인의 말이 내 귀에 더 깊게 들려왔다. “알래스카는 노인들에겐 좋지요. 겨울이 좀 길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아무래도 외로워요. 한국 같으면 친구랑 놀러다니구, 춤도 추러 다닐텐데...”

이 분은 나보다는 두서너살 아래이고 부인과 살고 있는데도 외로워했다. 왜 그럴까. 모국 아닌 이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것만이 아니다. 본인이 의식하거나 아니거나 인간은 소외된 자신을 자각하는 실존이기에 속 깊이 외롭고 슬프기도 한 것이다.

나는 독백했다. “떠나야지, 거친 황야 길 넘어 저 영원한 하늘 본향을 우러러보며 또 떠나가야지.”

나는 김광연 목사님이 운전하는 차로 앵커리지 공항에 나와 저녁 알래스카항공에 탑승했다. 일단은 큰 딸의 가족이 사는 뉴저지로 돌아갔다가 또 떠나려는 것이다. 어디로 고국, 아니 이젠 고국 아닌 조국, 모국 땅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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