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미국에서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

문태준/시인

최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다녀왔다. 재미시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여름문학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회원들의 작품집 '외지(外地) 24집'의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문금숙 시인에게 수여하는 재미시인상과 신예 시인들을 문단에 배출하며 격려하는 재미신인상 시상식이 함께 있었다.

재미시인협회는 1987년 9월 창립했고, 협회지 '외지'는 1989년 1월에 처음 발행되었다고 했다. 이번에 펴낸 24번째 작품집 '외지'에는 이창윤 시인의 권두언이 실려 있었다. "오랫동안 영어권에 살면서도 우리들은 모어(Mother tongue)로 시를 씁니다. 모어에서만 시적 감동을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여기서 출판되는 시전문지들이 미국과 남미 시인들의 시를 한역하여 소개하고 한인들의 시를 영역하여 나란히 싣는 것도 이 움직임의 일부로 여겨집니다."

재미 한인 시인들은 모어로 시를 창작하되 그것을 영역하여 미국의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낯을 익히고 있었다.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니 시적 관심사도 다채로웠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형권은 "디아스포라 차원의 이방인 의식을 노래하던 비중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의 차원으로 성숙되어 가는 징후"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주 한인 시인들이 근래에 펴낸 영문 시선집 '내가 모국이다(I am Homeland)'의 성과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최연홍 시인이 편집한 이 시집은 캘리포니아 시전문 출판사(Poetic Matrix Press)에서 출간되었는데 미주 한인 시인 12명의 작품들이 실렸다. 이에 대해 시애틀의 원로시인 잭 그랜 이반스 등이 이 시선집의 출간을 크게 격려했다. 특히 워싱턴의 최고 시인으로 알려진 에헬버트 밀러는 발문에서 "이 시집이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문화간 다리 역할을 하며, 세계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모국'과 '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학적 행위는 비록 자신이 경험한 특수한 것을 노래하는 것이지만, 결국엔 그 특수한 것을 다른 장소의 독자, 이방의 세계인과 공유하려는 의욕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편적 가치를 노래할 때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우리는 저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의 산간지방에서 평생을 살았던 프랑시스 잠의 시편들이 스테판 말라르메나 앙드레 지드 등에게 읽혀져 찬사를 받았고 당대의 수많은 시인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험하고 먼 여행을 결행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쓰촨성 량산에서 소수민족인 이족으로 태어나 이족의 고유한 서정을 노래해온 지디마자의 시편들이 세계문학의 한 영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문학적 국경이 사라진 시대, 모국과 외지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시도 세계의 독자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주 한인 시인들이 스스로 "내가 모국이다"라고 일컬으면서 '외지'의 독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는 현실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그것은 과거 세대 미주 한인 시인들이 흔하게 표출했던 외로움과 상실의 서정을 극복한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