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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불공평한 US-VISIT

[LA중앙일보] 발행 2004/01/10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4/01/09 17:52

이기준 시카고중앙일보 논설위원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바보는 달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손가락을 본다.

’ 지난 1985년 재일(在日) 외국인에게 지문날인을 시행중이던 일본정부에 맞서 프랑스 선교사 막심이 이같은 서양속담으로 일본을 비꼰 바 있다.

그는 재일동포 이상호씨 등 한국인 9명과 함께 일본에서 1980년 초부터 민족 차별적인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벌여오던 터였다.

결국 한국인들은 모두 체포돼 투옥되고 일본 체류허가가 말소, 추방령이 내려진다. 막심은 무려 2년여에 걸쳐 경찰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재판정에서 10만엔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재일 한국거류민단은 굴하지 않고 지문날인 폐지를 위한 1백만명 서명운동을 벌인다. 열화같이 번진 운동으로 서명인은 무려 1백80여만명에 이르렀다. 우리 동포가 아닌 일부 일본인들까지 동참한 덕분이었다.

일본정부는 마침내 지문날인의 불합리성을 인정, 1999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일본이 외국인 등록법을 제정해 거주 외국인에게 무조건 지문날인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 이 법은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패망한 일본에 끌려온 우리 재일 동포들을 효과적으로 통제·억압하기 위한 수단중 하나였다. 점령군인 미국등 선진국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지문(指紋)이란 인간이나 유인원들의 손바닥과 손가락 끝 혹은 발가락 끝 피부에 있는 융문(隆紋)이다.

융문은 융기선의 형태에 따라 크게 와상문(渦狀紋)·제상문(蹄狀紋)·궁상문(弓狀紋)의 3종으로 나눈다.

이들은 다시 9개 형태로 세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문은 인종·성별·개인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똑같은 형태의 지문형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 형질에 의해 평생 바뀌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범죄 수사나 개인식별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자국민이라도 범죄인에게만 시행중이던 지문채취를 아무 죄없는 우리 동포들에게 똑같이 적용했던 것이었다.

요즈음 비자 면제국 28개국을 제외한 타국민 미국 입국자들에게 무조건 지문채취와 사진촬영을 의무화(US-VISIT제도)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명색은 9·11 이후 국제적 테러위협이 날로 높아진 데 따른 예방대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정책중 미 입국비자 면제국민들만 제외시켜준 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비자면제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싱가포르·브루나이 뿐이고 나머지는 캐나다와 유럽국가들이다. 결론부터 말해 테러 방지 대책의 일환이라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똑같이 적용해야 당연하지 않은가.

국제적 테러리스트들이 그렇게 어리석게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킬까. 9·11 테러 용의자중 한 명인 자카리아스 무사위는 프랑스 국적자였다. 또다른 구두폭탄 비행기 납치 미수범은 영국여권 소지자였던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공평한 조치의 본 뜻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날 지문대조 수사법은 너무 많이 알려져 범인검거에도 효과가 적다는 것이 통설이다. 멍청한 범죄자나 자신의 지문을 남기고 달아나기 때문이다. 남의 지문을 이용하는 수도 있다.최근 미국 제3항소법원도 지문 증거능력을 일부만 인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쨋든 미국의 이번 조치로 비자면제 제외국들은 또 한번 형편없는 하류국가로 전락됐다. 그들은 이제 미국 입국시 여지없이 불량상품( ) 용의자 바코드가 찍혀 감시대상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완전 무시는 말할 것도 없고 체면조차 말이 아니다. 근래 전세계적으로 반미(反美)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다시 인종차별이니, 국가 차별이니 하는 국제적 비난이 거센 이번 조치로 미국에 대한 증오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미국인 입국시 같은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브라질도 이를 대변하고 있다. 누가 다시금 ‘∼바보는 달을 보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본다’ 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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