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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화두 수행

한 제자가 수학 시절에 유물론, 교육학, 심리학 등에 심취하여 삼세 인과를 부인하고, "인과는 착한 일을 하라는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자 대종사께서 말씀하셨다.

"인과의 진리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열려 직관하는 세계인데 마음에 때가 끼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느냐. 좌선할 때 마음이 그대로 있더냐. 마음이 여여하여 적적성성(寂寂惺惺·고요하고 초롱초롱함)하게 지속하기를 석 달 이상 한 후에 진리에 비춰보고 인과를 비춰 본 후에 인과에 가늠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책 몇 권 보고 어찌 인과를 부인하느냐".

이 말씀에 깊이 각성하고 정진하여 그 제자는 결국 인과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우주 만물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가, 시작이 없고 끝이 없는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 정도는 노력하면 얼추 감을 잡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뭣꼬?', '무(無)' 같은 화두에 이르면 감히 연구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반야심경] 라니. 눈, 귀, 코, 혀, 몸보다 있음(有)이 명확한 것이 어디 또 있으랴.



이와 같이 논리와 이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제목(題目)'을 연구하는 것이 화두 수행이다. 인과와 무(無), 생사, 윤회 등은 경험적,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정신을 맑혀 밝은 '성품으로 바로 비추어'(관조) 보아야 한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중국 남송의 주희(朱熹)는 평생 학문에 몰두한 유학자이다. 나이 50이 넘으면서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력 때문에 생각이 쉬는 시간이 많아지던 그때 그가 평생 동안 풀지 못해왔던 많은 학문적 이슈들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생각이 쉬면(명상) 밝아지게 마련이다.

관조만으로 화두가 풀릴까. 원불교 경전의 번역을 도왔던 불교학자인 로버트 버스웰 교수(UCLA)는 원불교 경전의 '분석'이란 말에 의아해 했다. 화두 수행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화두 수행은 관조(성품으로 비추어 보는 것)와 분석을 병행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박사는 우리의 잠재의식(측두엽)은 잠이나 산책 등으로 의식(전두엽)의 억제가 풀리는 동안에 보다 자유롭고 활발하게 기능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으며,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 끝에야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말한다.

간화선(看話禪)이란 화두를 들고 선을 하는 것을 말하지만, 우리는 선하는 시간에는 선만 하고 화두 연구는 좌선 직후나 시간을 따로 정해 정과 혜를 수행한다.

연구의 깊은 경지에 있는 수행자가 하는 것이 화두 수행이다. 불법에 대해 조금 이해가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화두 수행을 통해 불법의 진수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양은철 교무 (원불교 LA교당)

drongian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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