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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불체의 신분, 불체의 마음

김완신/논설실장

지난 15일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가 텍사스주 맥앨런 공항에서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체포 사유는 합법 체류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텍사스 국경지대에서 밀입국 실태를 조사한 후 LA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르가스는 위싱턴포스트에 근무하던 2007년,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기자다. 2011년에는 ABC방송에 출연해 불법체류자라고 밝히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12살 때 고향 필리핀을 떠나 캘리포니아 할아버지 집에서 생활한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불체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운전면허를 신청하면서 영주권이 할아버지가 돈을 주고 산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 졸업 후 몇몇 언론사에 인턴을 지원했지만 서류미비로 탈락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리건주에서 불법으로 받은 운전면허증으로 입사했다. 그는 기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지만 결국 언론사를 떠나 이민활동가가 됐다.

미국에는 바르가스와 같은 서류미비자(Undocumented), 즉 불법체류자가 약 11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합법적 신분을 허용하는 이민개혁법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이었다. 오바마 1기에 법안 통과를 기대했지만 건강보험개혁안 등에 밀려 2기로 넘어갔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의 의욕적인 추진에도 공화당의 반대로 번번이 장벽에 부딪치고 있다.



지난 대선을 통해 이민자커뮤니티 유권자의 힘을 실감했던 공화당이 이전에 비해 이민개혁법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텍사스 국경을 넘어오는 밀입국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강경 이민정책으로 선회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11월 선거를 앞두고 불법이민의 심각성을 부각시켜 전통적인 보수표 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민개혁법안 통과가 올해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내달 중에 불체자 구제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시민권자 자녀와 이미 추방유예를 받은 청소년의 불체자 부모에게 한시적으로 추방유예 혜택을 주는 것이다. 행정명령이 시행될 경우 470만~500만명이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제적인 이민개혁에는 미흡하지만 가족간 생이별은 막을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 중 약 4000만명은 외국에서 출생한 이민자다. 전제 인구의 12~13%를 차지한다. 건국 이후 미국의 이민정책은 시대별로 변화를 겪어왔다. 인종별로 제한을 두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이민자수가 적은 국가의 이민을 장려해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민정책에 있어 변하지 않는 원칙은 가족간의 결합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다. 가족이 미국에서 모여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취업이민을 허가하고 망명자를 받아들이고 투자이민을 유치하지만 이 모든 이민정책에서 가족의 결합은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추방위기에 놓인 불체자들에게 임시적인 안식처는 될 수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체류와 노동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 사면조치는 아니다. 신분변경을 위한 사면을 보장하는 이민법개혁법안은 의회의 관할이다. 또한 행정명령은 정권이 바뀌면 취소될 수 있어 영구적이지 않다.

이민자들의 공헌과 헌신은 200년 넘게 미국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이면서 저력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이 양당의 힘겨루기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서류미비자들의 체류문제를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으로 나누기에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택한 불체의 신분이지만 가족을 찾는 간절한 마음까지 불법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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