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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세월 가도 변치 않는 '사기 3종 세트'

정 구 현 /사회부 차장

사기범은 신뢰로 먹고산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반듯한 생김새, 똑똑한 언변, 그럴듯한 사업계획은 '사기의 3종 세트'다. 역대 대형 사기범들은 여지없이 이 세 가지 뿌리치기 힘든 매력으로 큰 돈을 벌었다.

'카를로 피에트로 지오반니 굴기예르모 테발도 폰지'라는 긴 이름의 이탈리아 출신 사내는 전설의 사기범으로 불린다. 1920년대 그는 국제우표쿠폰(IRC)을 투자상품으로 앞세웠다. IRC는 해외 우편을 보낼 때 요금을 미리 지불한 회신용 우표 쿠폰이다. 우연히 얻게된 IRC로 기가막힌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전쟁 직후 물가가 치솟으면서 환율이 불안정했다. 해외에서 1센트짜리 IRC는 미국에서 6센트 가치로 통용됐다. 6배 장사였다. 해외에서 IRC를 싼 값에 대량 매입해 미국에서 높은 환율로 유통시킨다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잘생겼고, 언변 좋은데다 기가막힌 투자상품의 삼박자는 딱 맞아떨어졌다.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요즘 가치로 1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탈리아에서 단돈 2달러50센트를 들고 건너왔던 37세 무명의 이민자는 단 몇 달 만에 금융계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투자금을 상쇄하기 위해 필요한 IRC를 계산해보니 1억6000만 장이 유통되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시장에 깔린 IRC는 고작 2만7000장에 불과했다. 사업의 실상은 투자가 아니라 '돌려막기'였다.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익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 수법은 지금도 사기범들이 모방하는 사기의 정석이다. 그의 이름을 딴 '폰지 사기(Ponzi scheme)'다. 당시 그가 신문에 낸 투자자 모집 광고는 이렇다. '45일 내 원금의 50%, 또는 90일 안에 100% 수익을 보장합니다.'

기간과 수익률만 다를 뿐, 똑같은 광고가 한인사회에도 나갔다. 2005년이다. '3년 만기에 연간 10% 이익 보장.' 최근 제주 네스트힐 투자사기 사건으로 체포된 코우사(KOUSA) 대표 한상수(43)씨와 동부지역 사업 파트너인 김기영(54)씨의 투자자 유치수법이다. 이들은 각각 LA와 뉴저지 양쪽의 한인사회에서 투자금을 모았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속아줬다.

이들의 투자계획이 먹혔던 이유는 수익률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따로 있다. 피해자들을 취재했더니 다들 같은 말을 했다. 이들은 과거에 '금호개발'이라는 회사에서 함께 일한 직원들이다. 그 때 비슷한 방법으로 투자자를 유치했단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익금을 다 돌려줬다고 했다. 그때 재미를 본 사람들이 다시 이들에게 투자했다. 이번엔 가족, 친구, 이웃을 투자자로 데리고 갔다. '나만 벌지 말고 같이 벌자'는 한인 특유의 인정이 작용했다. 물론 당연히 금액도 커졌다.

피해자중 누구도 투자상품인 제주도 콘도와 이들과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비슷한 리조트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이들이기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만 집착한 결과였다.

피해자중 한사람이 제주도 콘도를 찾아갔다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 리조트 대표가 한씨와 김씨를 모른다고 했다. 이 피해자는 미국으로 돌아와 다른 투자자들에게 뭔가 이상하다고 알렸단다. 그런데 투자자들의 반응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피해자중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더라."

사실 믿지 않았다는 말보다는 믿고 싶지 않아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른다. 폰지 사기라는 말이 탄생한 지 한 세기가 되어가지만, 사기의 공식은 여전히 같다.

사기범은 '눈먼' 신뢰로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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