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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문화칼럼] 원전연주란?

 오르간 주자이자 지휘자인 칼 리히터는 생전에 바흐 음악의 대가였다. 특히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총 3번(1958년, 1969년, 1979년)에 걸쳐 이 곡을 녹음하였다. 그런데 녹음할때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가 사랑하는 뮌헨바흐합창단이었다.

이 합창단은 독일합창단이기에 독일어 가사를 완벽히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원의 숫자가 120명에 이른다. 과연 바흐가 살던 시대에도 그렇게 대규모 합창단이 노래를 했을까?

 그가 봉직했던 라이프지히 교회는 그렇게 크지 않을 뿐더러 노래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규모 합창곡인 마태수난곡의 초연을 위한 성악진의 숫자라고 해봤자 솔로이스트와 합창단을 합쳐 24명에 불과했고 (악기주자는 30명정도였다) 단원들도 학생들과 동네사람들이었다.

특히 바로크시대에는 여성들이 노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함부르크같은 자유도시에서는 여성의 참여도 가능했지만 라이프지히에서는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 여성들이 자유로이 합창할 수 있었던 것은 고전시대 이후이다.) 테너와 베이스는 물론이고 소프라노와 앨토까지 소년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소프라노와 앨토를 소년들이 맡다보니 근본적으로 음악성이 부족할 뿐아니라 앨토의 경우 저음역이 불안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소년들은 언젠가 변성기를 맞게 되므로 2-3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교체되야 하는 등 여러가지 악조건이 따랐다.

 이렇듯 바흐가 살던 시대에 소박하고 조악하게 연주되었던 형태와 그것이 20세기에 와서 규모가 확장되고 서정성이 가미되어 세련된 연주를 이루는 상황은 분명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도 작품이 작곡되었던 시대의 스타일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이미 1970년대초에 해답이 모색되었다. 아르농쿠르와 레온하르트 두사람이 바흐의 합창곡을 원래의 형태대로 복원해 연주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이렇게 원래의 형태대로 복원해 연주하는 것을 원전연주(原典演奏, Authentic Performance) 혹은 정격연주(正格演奏)라고 한다.

 아르농쿠르와 레온하르트는 원전연주를 위해 일반적인 관행인 소프라노와 알토에 여성을 기용하는 대신 바흐시대의 관행대로 소년을 기용했다. 그리고 솔로이스트에서도 당시 처럼 소년을 기용했다 (하지만 앨토 솔로이스트로는 카운터 테너가 기용되었다). 이에 반해 원전연주의 후발주자인 가디너나 헤레베헤같은 지휘자는 현대식으로 성인여성을 합창과 솔로이스트로 기용했다. 하지만 최대한 비브라토를 자제하게 하고 바로크의 창법을 따르게 훈련시켰다.

 비록 가디너나 헤레베헤같은 이는 합창단의 구성에 있어 과거를 따르고 있지 못하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스피디한 현실에서 볼때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아르농쿠르와 레온하르트가 바흐 칸타타 전집을 완성하는데 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주요한 이유는 가정과 학교에 매어있고 음악적으로도 미숙한 소년들을 모아 효율적으로 음악을 만들기가 그다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농쿠르는 이렇게 쉽지 않은 대업을 이룩해놓고도 “진정한 원전연주는 작곡가자신이 연주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진정한 원류에 다가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알 수 있다.

 원전연주는 합창형식뿐만아니라 악기까지도 당시에 연주되던 악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관악기의 경우 ‘키’와 ‘밸브’가 달리지 않은 악기이고 현악기는 금속제 현대신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를 사용한다. 악기의 연주에서도 속도, 강약, 비브라토, 주법 등이 현대와는 틀리게 된다.

 필자가 원전연주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헨델의 메시아 음반을 듣던 중 당시의 관행처럼 대규모 합창단이 목이 터져라고 큰소리로 불러제끼는 대신 소규모의 합창단이 부드럽고 청아하게 넘어가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의 연주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닿게 되었다. 원전연주는 전반적으로 현대적인 연주에 비해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그러면서 각 연주자의 개성이 속도감있게 반짝반짝 살아 숨쉰다. 이러한 개성과 속도라는 요소는 오늘날의 청중들과 코드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요소를 더욱 부각시킨다면 원전연주가 장래에 보다 각광받는 연주형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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