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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영화 '명량'의 익숙함과 지루함

김완신/논설실장

영화 '명량'을 본 것은 순전히 궁금증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한국 영화사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명량'은 영화로서 흥행요소가 없어 보였다. 일단 소재를 역사에서 가져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한, 대강의 줄거리는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다는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다. 영화 중 이순신 장군이 온갖 역경에 처해도 결국은 승리할 것임을 알고 있어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번째 생각한 흥행 '저해 요소'는 전투장면이 61분이나 된다는 점이다. 치고받는 싸움으로 영화의 반을 채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화는 최단기간에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영화의 성공요인을 사회 분위기에서 찾는 의견도 있다. 진정한 지도자가 부재한 시대에 이순신과 같은 인물에 대한 열망이 영화관을 찾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예술이다. 지도자를 향한 열망이라는 거창한 명분 때문에 돈까지 내면서 두 시간 넘게 지루한 영화를 지켜볼 관객은 없을 것 같다.

'명량'의 관객몰이는 외적 요소가 아닌 영화 자체에서 찾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선과 악의 명료한 구조를 지닌다. 선과 악을 극렬하게 대비시켜 선이 반드시 이긴다는 공식을 따르면 된다. 다시 말해 선한 이순신이 악한 왜군을 무찌르면 그만이다. 그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명량'은 이런 도식을 벗어난다. 이순신 진영도 모두 선은 아니다. 그 내부에도 전세를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뉜다. 왜군 진영도 마찬가지다. 두 명의 왜장이 각자의 패권을 위해 대립.갈등한다. 이러한 중첩된 선악구조와 갈등이 영화의 큰 흐름에 부합하는 의미있는 줄거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전반에 걸친 이순신의 인간적이고 나약한 모습도 '명량'을 전쟁영화 이상으로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순신의 전형적인 캐릭터는 충성심과 용맹의 상징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갈등하고 두려워하는 인간으로 나온다. 이순신의 이 같은 내면은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표출되면서 전쟁 영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영화 전반부가 이순신의 인간적인 갈등과 승리의 당위성에 대한 복선이라면 후반부는 본격적인 전투다. 촬영을 위해 설치된 세트와 배, 그리고 CGI기술(컴퓨터 영상 합성기술)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견줄 만하다. CGI의 비중이 높은 영화는 대부분 허구여서 스토리가 황당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성공하는 것은 사실성이 느껴지게 하는 정교한 컴퓨터 영상기술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명량'은 장점이 있다. 수준급 CGI에 그 기술로 재현하려는 스토리가 전혀 공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13척으로 133척(또는 333척)을 격퇴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역사적 사건의 엄연한 존재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전투 중간중간에 아들과의 회상 장면을 끼워넣어 전술의 필연성을 '해설'한 것이나 때때로 함선 배치를 조감도로 보여줌으로써 전투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시킨 것도 관객에 대한 탁월한 배려였다.

전반적인 완성도와 개연성에서 영화 '명량'이 우수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소 무리한 설정도 있다. 그러나 궁금증의 출발이었던 '익숙한 줄거리'와 '지루한 전투장면'은 없었다. '명량'은 역사적 사실을 수정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갖고 제작됐지만 결국 역사적 사실에 의지해 덕을 본 영화가 됐다.

'명량'을 보고 '익숙함'과 '지루함'의 궁금증은 해소됐지만, 그 궁금증을 풀기까지 전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에 의존했음을 부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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