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종우의 문화칼럼] 지휘계의 CEO 함신익

 흔히 지휘자의 이름앞에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이라는 직함이 붙는 경우가 있다. 상임(常任)지휘자란 객원(客員)지휘자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오케스트라(혹은 합창단)를 책임지는 지휘자가 되는 것이고, 음악감독이란 오케스트라가 어떤 곡을 연주할지 등의 음악적인 사항을 기획하는 사람을 일컫게 된다. 이 둘을 꼭 겸할 필요는 없지만 대개는 한사람의 지휘자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휘자 함신익의 경우 그간의 행적을 돌이켜볼때 이 둘의 직함 외에도 CEO(Chief Executive Officer)라는 직함을 붙여야 마땅할 것 같다. 마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도 같이 오케스트라의 행정에 관여하여 그 조직을 경쟁력 있고 가치있게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스펜서 존슨의 베스트셀러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에서처럼 미로속의 치즈가 옮겨지더라도 그 상황에서 낙담하기보다는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치즈를 찾아나선다.

 예를 들어 예산이 부족해져서 공연을 추진하기 어렵거나 단원들의 임금이 삭감될 위험에 처했을때 그 변화의 상황에서 그대로 주저앉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간다. 부족분을 메워줄 후원자를 직접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원자 앞에서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단지 “뜻있는 일이니 도와달라”는 식이 아니다. 보다 구체적인 윈윈전략을 제시한다. 과연 이번 지원으로 해서 어떻게 후원자와 오케스트라간에 상호 이익이 돌아오게 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결국 100% 이상의 지원을 얻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또한 CEO 함신익은 경제적인 후원측면에서만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오케스트라의 기량을 제고하기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며 쇄신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단원들은 자연히 해고감이 된다. 대신 실력있는 연주자들에게는 언제든지 자리가 열려있다.



고인물은 썩게 되고 환기가 안되는 곳에서 병이 나듯이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려는 오케스트라는 도태될 수 밖에 없기에 그는 끊임없는 체질개선을 요구한다. 때로는 청바지를 입고 가볍게 듣는 음악회를 만들고 때로는 40세 미만의 젊은 층만 입장시키기도 하며 스스로가 축구복장을 하고 지휘대위에 서서 청중들과 함께 ‘오 필승 코리아’를 노래한다.

 텍사스의 애벌린(Abilene)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경영전략 덕택에 회생하게 된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다. ABC방송에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성장’을 가져온 그의 스토리를 방송하기도 했으며 애벌린시는 보답으로 함신익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남다른 경영능력을 지니고 있어 손 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다스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휘자로서 제일 중요한 음악성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1991년 텃세가 심한 유럽의 그레고르 휘텔베르크 지휘콩쿨에서 은상을 받은 이후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역량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현재는 예일대학교의 음악과에서 부교수로 지휘를 가르치며 학부생들의 오케스트라인 예일 심포니도 지휘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볼때 그는 진정 음악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지휘자다. 가난한 목회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교회반주를 위해 피아노에 입문했고 건국대 피아노과에 진학하게 될때까지는, 그 자신이 밝힌 바와 같이, 그다지 큰 비젼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고작 200불을 들고 미국에 건너와서 라이스대학교, 이스트만 음악학교를 거치며 그의 음악인생은 그의 눈빛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열정과 노력을 통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바꾸는 그의 능력. 아마도 어린 시절을 삼양동의 달동네에서 보내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리라. 지휘과 학생들을 위한 변변한 오케스트라가 없자 스스로 깁스(Gibbs)라는 이름의 실내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기존의 오케스트라보다도 훌륭히 만들어놓은 것은 음악의 명문 이스트만에서도 전설로 통한다고 한다.

 그는 2001년부터는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도 맡고 있다. 물론 한국정부의 미흡한 예술정책이나 행정관료들의 고압적이고 불합리한 사고방식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마찰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벌써부터도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들이 발견되고 있고 앞으로 그 폭이 더 커지리라 생각한다. 미국생활을 통해 터득한 값지고 귀한 능력을 한국에서도 십분발휘하리라 기대한다.

 지난 여름 워싱턴 코리안 심포니의 객원지휘를 위해 버지니아에 온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전시향의 지휘자로 부임해 지금의 상황이 본래의 계획되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묻는 나의 질문에 “노력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그에게 무언가 생각을 관철하기에는 어려운 난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에서 궁극의 성공을 예감하게 되었다. 또한 사인해주고 있는 책의 대금을 꼬박챙기는 모습에서 비지니스 감각을 겸비한 지휘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다시 한번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