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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억울한 옥살이 25년' 이한탁씨, 체포에서 석방까지

초동수사서 방화로 둔갑, 유력 용의자로 지목돼
주 법원, 재심 요청 기각…기나긴 '법과의 싸움'
연방항소법원 '비과학적 증거' 주장 마침내 인정

중부지법 '증거 심리' 뒤 유죄평결·형량 무효화
보석 신청 승인, 22일 석방…25년 만에 '자유'


‘이한탁 사건’은 지난 1989년 7월 29일 오전 3시쯤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 스트라우드 타운십에 있는 헤브론 수양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원인이다.

1978년 뉴욕으로 이민 온 이씨는 퀸즈 엘름허스트에서 아내와 두 딸 등 가족과 함께 살며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큰 딸 지연(당시 20세)씨가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씨의 지인들에 따르면 지연씨는 당시 화장실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오랜 시간 나오지 않는 등 심각한 우울증 증세로 본인은 물론 다른 가족들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때 이씨 가족이 다니던 교회 측은 이씨에게 수양관에서 기도할 것을 권유했고 이씨는 사건 전날인 7월 28일 지연씨와 함께 수양관으로 갔다. 이 길이 이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길이 되고 말았다.

#. 방화 살해범으로 체포되다

수양관에 도착한 이씨 일행은 저녁 기도를 마친 뒤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전 3시 불이 났다. 이씨는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와 전선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뒤 바로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지연씨가 안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다시 건물로 들어갔으나 이미 내부에는 검은 연기가 꽉 찬 상태였고, 지연씨를 찾지 못한 채 다시 빠져나왔다.

화재가 진화된 뒤 지연씨는 화장실 앞, 붕괴된 지붕 잔해 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에 의한 화재로 여겨졌던 이 불은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누군가 불을 지른 방화 사건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검찰은 유력한 방화 용의자로 숨진 지연씨의 아버지 이씨를 지목했다.

▶경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짐을 챙겨 나온 것 ▶잠옷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 ▶옷에 기름 같은 발화물질이 묻어 있었다는 점 ▶딸이 죽었는 데도 무표정이었다는 점 등이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검찰의 이유였다.

이씨는 결국 1989년 9월 6일 방화와 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지연씨가 평소에도 우울증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다는 배경을 이씨의 살인동기로 적용하며 여러 전문가의 진술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씨가 총 64갤런의 발화성 물질을 건물 내부에 뿌려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씨의 변호사였다. 처음 이씨 사건을 맡았던 로버트 로젠블룸 변호사는 이씨가 불을 지른 게 아니라 우울증을 앓던 지연씨가 자살을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는 변론을 폈다.

다시 말해 사고에 의한 화재가 아닌, 처음부터 누군가 불을 질렀다는 검찰의 방화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범인만 숨진 지연씨로 바꾼 것이다.

로젠블룸 변호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증인으로 내세워 지연씨의 우울증 상태가 심각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특히 로젠블룸 변호사는 당시 화재가 전기 누전에 의한 것이며 건물 바닥이 집중적으로 타들어간 자국은 발화 물질이 아니라 타르 성분의 지붕재가 녹아 떨어지면서 생긴 자국이라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손경탁 이한탁구명위원회 위원장에 따르면 로젠블룸 변호사는 당시 누전이 사고 원인이라는 전문가 보고서가 나오자 수임료 1만 달러를 더 요구하며 재판에서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배심원단은 로젠블룸 변호사의 주장 대신 검찰 측의 수사 결과에 동의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 기나긴 ‘법과의 싸움’ 끝에 핀 희망

결국 이씨는 누명을 쓴 채 변론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기나긴 법과의 싸움을 치렀다. 영어도 못해 변호사와 소통하기도 어려웠고, 이 때문에 정당한 무죄 주장도 못해보고 유죄 평결을 받아야 했다.

변호사가 네 차례나 바뀌면서 펜실베이니아주법원에 여러 차례 재심과 항소를 반복했지만 매번 “검찰의 증거를 번복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됐다.

그러다 끝내 연방항소법원에서 마지막 항소가 받아들여졌다. “바지에 묻어 있던 것은 발화물질로 보기 어렵다”며 20여 년간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해 온 화재감식 전문가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가 증거로 공식 채택됐다.

항소법원은 지난 2012년 펜주 중부지법에 ‘증거 심리’를 명령했다. 증거 심리는 이씨가 유죄 평결을 받는 데 사용된 증거의 유효 여부를 가리는 기회였다.

“이씨 사건은 지금까지 열린 재판 가운데 가장 악의적인 판례”라고 지적하며 이씨의 무죄를 주장해 온 렌티니 박사가 지난 5월 29일 열린 증거 심리에 출석해 처음으로 구두 증언을 했다.

결국 중부지법은 이씨의 유죄 평결과 형량을 무효화하라고 판결하고 지난 19일 석방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이씨는 오는 22일 보석 심리에 출두한 뒤 25년간의 수감 생활을 끝내고 풀려날 예정이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이한탁씨 사건 일지

-1989년 7월 29일: 오전 3시 이한탁씨와 딸 지연(당시 20세.프랫 인스티튜트 재학)씨가 머물고 있던 펜실베이니아주 포코노 지역 스트라우드 타운십에 있는 뉴욕의 한인 교회 소유 수양관에서 화재 발생. 이씨는 탈출에 성공했으나 당시 목욕탕에 있던 지연씨는 현장에서 사망

-1989년 9월 6일: 이씨 뉴욕 퀸즈 자택에서 펜주 스트라우드 타운십 경찰에 의해 1급 살인과 방화 혐의로 체포

-1990년 9월 5~16일: 먼로카운티 법원 대배심 공판

-9월 17일: 배심원단 유죄 평결

-1991년 6월 19일: 먼로카운티 법원 이씨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

-7월 19일: 이씨 측 변호사 교체 후 펜주 항소법원에 항소 신청

-1994년 7월 5일: 항소 신청 기각

-1995년 8월 31일: 이씨 교도소 수감 중 단독변론(pro se)으로 재심 기회 주는 신병보호(habeas Corpus) 신청. 그러나 검찰 측 아무런 대응 안 해 무기한 연기

-1999년 10월: 김대중 대통령 펜주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토마스 리지 주지사에게 재심 검토 요청. 주정부는 검토 후 "이씨에게 재심과 사면 기회 있다"고 발표. 그러나 그 후 아무런 조치 취해지지 않음

-2005년 5월 2일: 이씨 항소 기각된 수감자에게 주어지는 재심(PCRA) 신청

-11월 1일: 재심 기각

-2006년 8월 17일: 펜주 항소법원 이씨 재심 신청 다시 기각

-2008년 10월 29일: 피터 골드버거 변호사 연방법원 펜주 중부지법에 이씨가 95년에 신청했던 신병보호 재신청

-2010년 9월 22일: 펜주 중부지법 신병보호 신청 기각

-10월 21일: 이씨 측 연방 3순회 항소법원에 신병보호 기각에 대한 항소 신청

-2011년 11월 8일: 제3순회 항소법원 항소 승인

-12월 12일: 제3순회 항소법원 이씨의 변호사 법정 구두 진술 승인

-2012년 1월 27일: 제3순회 항소법원 중부지법에 증거 심리 명령

-2014년 5월 29일: 펜주 해리스버그의 연방 중부지법 '증거 심리' 열어

-6월 13일: '증거 심리' 주재한 연방 중부지법 예심판사 석방 요청하는 권고문 발표

-6월 27일: 이씨 기소했던 펜주 먼로카운티 검찰 법원 권고문에 대한 이의제기 접수

-8월 11일: 이씨 측 변호인단 연방 중부지법에 이씨 보석 석방 요청

-8월 19일: 연방 중부지법 본심판사 이씨 보석 석방 승인

-8월 22일(예정): 연방 중부지법 예심판사 이씨 보석 석방 심리 주재. 이씨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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