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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어느 탈북동포의 쓸쓸한 폐업

이원영/논설위원·기획특집부장

얼마 전 LA한인타운 어느 길 모퉁이 식당에 들렀을 때다. 저녁 7시쯤 한창 손님들이 많아야 할 시간이었음에도 주인 부부만 엇박자로 앉아 있었다. 몇번 찾았던 적이 있었기에 부부는 반색하며 맞았다. 손님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자 요즘 좀 뜸하네요,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이주일쯤 지났을까, 다시 찾았을 때 그 식당은 폐업한 상태였다.

주인 부부는 탈북동포 출신이다. 남한에서 10여년 억척스럽게 일하고 장사하면서 돈도 모았고, 다른 탈북동포들보다 수완이 좋아 미국까지 올 수 있었다. 부인이 식당 주방일을 하며 종잣돈을 모아 3년 전 큰 맘 먹고 식당을 차린 것이 실패로 끝나버린 것이다.

한번은 "이북 말투가 장사에 도움이 안 되지요?" 물었더니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장사 실패에 몇가지 원인이 있어 보였지만 '이북 액센트'도 그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보다도 '반북정서'가 강하다는 한인사회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았다.

통일을 위해서는 반북.종북이 아닌 '친북'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원광대 이재봉 교수(사회과학대학장)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남한의 공식 통일정책은 북한과 화해협력을 통해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런 국가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친북적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친북은 북한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며, 북한의 이념.체제를 추종하는 '종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20년 가까이 '친북주의자'를 자처하며 수백 편의 글과 강연을 통해 같은 주장을 펴왔다. 국가보안법 사안과 관련해 '전문가 증언' 요청을 받고 7~8차례 법원에 나가 같은 논지를 펴왔지만 문제된 적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의 통일정책이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로 바뀌었지만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반북 감정을 신념처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 '반북주의'는 크게 해방전 친일파, 북의 토지개혁과 종교탄압의 희생자, 전쟁 중 인민군에 당한 피해자, 냉전시대 반공교육에 의한 세뇌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반북정서는 분단정서와 직결되어 있다. 해방이 되자마자 남북으로 갈렸으니 내년이면 70년 분단 경험이다. 분단 이전 온전한 조국에 대한 기억은 80세 이상에서나 가능한 시대가 됐다.

하나의 조국이 두 동강 나려는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 선배들은 어떤 심경에 처했을까. 이는 최근 중앙일보가 보도한 '자유한인보'에 잘 나타나 있다. 1945년 11~12월에 7호까지 발간된 이 잡지는 일제에 징용됐다 미군에 잡혀 하와이에 수용되었던 한인 포로 2700명의 소식지다. "(38선 지도를 싣는 것은) 우리의 모든 힘을 모아 이 선을 지우고 진실한 대한사람의 대한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 "(미.소가 남북을 점령한) 현상태의 조국을 어데라고 불러야 옳으며 우리가 갈 곳은 어데라 말인가" "한 뭉치가 되여서 조국의 완전독립을 맨들 것이다" 곧 귀국선을 타는 순간임에도 쪼개지는 조국의 현실을 통탄하는 마음이 넘친다.

그러나 선배들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분단은 현실화됐고,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단정서'는 모태신앙이 되어버렸다.

이재봉 교수처럼 '친북을 하자'고 말할 용기는 없다. 다만 모태신앙과 같은 '반북정서'로는 북한과 교류.화합하고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은 요원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쓴맛을 본 탈북동포 부부가 '이북 액센트' 때문에 장사가 더욱 잘 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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