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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제주의 혼'을 만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4/08/21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8/20 22:20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루게릭병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인생의 말기에, 자신이 일생 동안 찍은 제주도 풍경을 보며 어느 사진 작가가 한 말이다.

20대부터 시작하여 중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파도 부딪치는 제주 해안과 한라산, 고즈넉한 언덕들(그는 오름이라 불렀다), 그 사이를 무섭도록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과 바람의 외침들을 사진에 담았다.

지난 5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다시 찾아간 제주도에서 나는 처절하게 젊음을 불태우고 간 김영갑이라는 작가를 유고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아내도 자식도 집도 없이 살던 그가,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작은 마을의 폐교된 초등학교에 마련한 김영갑 갤러리에서 말이다.

그 폐허의 학교 건물에 길을 만들고 돌을 깔기 시작한 것은 이미 근육의 힘이 없어져서 셔터조차 누를 수 없는 상태로 불치의 병을 선고받은 후였다. 3년 정도 더 살 수 있으리라는 선고를 받은 후에 그는 자신의 갤러리를 죽는 힘을 다해서 만든 셈이다.

나에게는 14살 때부터 우정을 지켜온, 고향과도 같은 친구가 있다. 그녀는 한국의 방방곡곡,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를 한시도 쉬지 않고 찾아다니는 사진작가다. 이 친구를 통해 나는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꼭대기건 낭떠러지 중간에서건, 해 뜨는 또는 해 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몇 시간이건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느라 상처난 어깨를 수술한 뒤에도 친구는 새벽이고 한밤이고 빗속에서도 길을 나선다. 그리고는 한없이 기다린단다. 아름다움의 찰나를.

내 친구의 작업 모습을 보았기에 필름을 사기 위해 끼니를 굶었다는, 그래서 당근이나 고구마를 캐어 먹으면서 한없이 아름다움을 찾아서 걸어다녔다는 김영갑 작가의 배고프고 외로운 혼이 더욱 마음을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갤러리에서 본 오름 위 강풍에 휘어진 소나무, 구름과 능선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자연의 오케스트라, 검은 바위 위로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파도의 절규가 눈을 통해, 귀로, 또 영혼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라산의 영향 때문인지 제주도에는 2000여종의 식물이 산다고 한다. 김영갑 갤러리에서 본 작품 속 나무와 풀과 꽃은 다른 지방 것들과 별 다름이 없는 듯한데도, 그들이 마음으로 전해주는 외침에는 흐느낌 아니면 한숨 또는 속삭임이 있다.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에 특별히 다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 작가는 그러기에 아무런 형식에 구애받음 없이 고독한 예술혼을 자기만의 열정으로 불살라냈는지도 모른다.

그의 풍경 속에서 나는 처절한 기도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이 바람과 돌과 한 많은 역사를 지닌 제주도 땅덩어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 땅에 미치게 빠져들었던 한 예술가의 것이었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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