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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이한탁 구명위원장과의 통화

이종호/논설위원

억울한 감옥살이.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뉴스다.

2013년 3월 뉴욕, 유대교 랍비 살해 혐의로 23년을 복역했던 데이비드 랜타라는 흑인 남성이 석방됐다. 목격자가 거짓 진술을 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서다. 같은 해 루이지애나주의 글렌 포드라는 흑인 남성도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30년 가까이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진짜 범인이 나타난 덕분이다. 2010년엔 성폭행죄로 27년간 옥살이를 하던 마이클 그린이라는 흑인 남성이 무죄방면을 받았다. DNA 검사로 자신의 결백이 입증된 것이다.

이렇게라도 석방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 한다. 그렇다면 끝끝내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억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결정적인 증거 없이 오로지 목격자의 부정확한 진술에만 의존해서, 혹은 부실한 단서와 과도한 추론에 의해 죄인으로 몰아가는 미국 사법제도의 치명적 허점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석방된 이한탁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억울하기로 치면 그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딸을 잃은 것도 절통한데 그 딸을 살해한 살인방화범으로까지 몰려 25년이나 통한의 옥살이를 했으니.

이렇게 풀려난 사람들, 사법당국이 마음이 변해 그냥 내 보내 준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매달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부당한 제도를 고발하고 불의한 상황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한탁씨의 경우도 그랬다. 그의 곁에는 한인커뮤니티가 있었고 그 중심에 손경탁(75)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2006년까지 뉴욕에 살 때 가끔 손경탁씨를 만났었다. CCB라는 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10년 넘게 펜실베이니아 감옥으로 한글 신문과 책을 보내주고 있다며 이한탁씨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매주 화, 목 2번씩 우리 사무실로 콜렉트콜 전화가 옵니다. 이한탁씨에겐 그것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시간이죠. 전화가 오면 따뜻하게 받아주고 이런 저런 세상 소식도 전해줍니다. 바깥에서 열심히 구명운동을 하고 있으니 낙담말라 격려도 하고요. 이한탁씨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한탁씨가 석방되던 날,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손경탁 구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부시간, 밤 12시가 다 되었을 무렵인데도 주변이 왁자한 게 아직도 석방의 감격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축하 인사를 전하자 "모두가 자기 일처럼 도와준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어떻게 그 긴 세월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구명운동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희망이죠.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희망, 억울한 누명은 꼭 벗겨질 것이라는 희망. 그동안 구명위 활동도, 이한탁씨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손경탁씨가 한 일은 작게 보면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의 20여년 싸움은 '정의사회'를 향한 싸움이었다. 무엇이 정의사회인가.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정작 본인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실은 그런 세상을 위해 손씨는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지금도 한국에서 미국에서 혹은 세계 어디선가에서는 억울해서 울고, 원통해서 우는 사람들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싸운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위해, 더 이상 병영 폭력 희생자가 없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모든 차별과 야만의 철폐를 위해….

물론 이런 일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 행동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많다. 하지만 지금 내가 조금 불편하다 해서 그들의 작은 발걸음까지 가로막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이 붙잡고 있는 희망의 불씨는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싸워가는 이들에 의해 조금씩 발전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해서 나아진 세상에 누구보다 먼저 편승할 사람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억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합니다." 25년 만에 돌아온 이한탁씨의 첫 한마디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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