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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나누 나누’와 ‘고니찌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였다. 하늘 높이로 우뚝 올라선 고층건물들에 둘러싸여서 멋진 건축물의 매력을 즐기다가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 뉴스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앞 건물의 모습이 반사되어 흡입된 거대한 유리벽 건물에 시선이 멈췄다. 나의 이민 초기가 생각났다. TV 드라마 ‘모크 앤 민디’에서 외계인으로 다가온 젊은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치며 두 손가락씩 붙여 들고 “나누 나누” 라 인사하던 그의 음성이 또렷히 들렸다.

그당시 미국생활에 적응하려고 첨벙이던 나처럼 그도 지구생활에 적응하느라 좌충우돌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치 눈 앞의 고층건물에 신비롭게 흡수된 또 하나 건물처럼 색다른 안목으로 나의 미국사회 적응을 도왔던 드라마였다. 재치있던 그의 언어 사용과 영어의 이중 의미를 조금씩 배워가던 재미도 많았다. 나는 단번에 그를 좋아했다. 그 후 이어진 작품들을 보면서 사람을 웃고 울리는 탁월한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 언제나 주어진 역활을 전신으로 열연하던 그가 세상을 마친 방법이 자살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데 그의 십자가 무게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던 사연이 안스러웠다. 남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위안을 주지 못한 환경도 딱했다. 시카고 여러 곳, 공원의 조각상에서나 미술관의 초상화 앞에서, 미시건 호숫가의 커피숍에서나 햇살에 부셔지던 물길에도 그는 서성거렸다. 여전히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낯선 사회의 일상이 아름답고 흥미로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의 죽음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고뇌를 혼자서 삭였던 그가 마침내 평안을 찾았길 바랬다.



이번 주 머물고 있는 남쪽 바닷가는 여름의 절정이다. 워싱턴 D.C.에서 내려온 큰딸 부부와 우리 부부는 어지러운 세상사를 보도하는 뉴스매체와 멀리 떨어졌다. 화끈하게 더운 날씨에 벗고 나선 가족들은 뜨거운 태양에 피부가 따갑게 익어도 웃는다.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자연과 화합한 우리는 단순한 일상이 계속되어도 마냥 행복하다. 오늘도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와 호텔의 로비에서 나른하게 풀어져 밤 술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은 남자가 계속 우리를 주시했다. 폭신한 의자에 깊숙이 앉았던 딸과 나는 자세를 옮겨서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피했다. 기분좋게 술에 취한 남편과 사위도 느낄 정도로 그의 관심은 끈적했다. 잠시 후 낯선 남자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그의 자세는 전통적인 일본인의 모습이었다. 두손을 모으고 깊이 수그렸던 고개를 든 그의 첫 인사가 “고니찌와” 였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중년의 백인남자였다.

저녁인사는 “곰방와” 라며 남편이 답례하자 그가 “아리가또”라며 다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일본어로 다가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우리는 질문을 했다. 그는 앨라배마에서 태어나 자랐고 교육받은 토박이 앨라배미안이었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그가 하는 행동이 너무나 일본식이어서 일본과의 인연을 물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2차 대전시 전쟁포로로 일본에 2년반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것 외에는 없었다. 비록 할아버지는 고난을 받았어도 자신은 일본에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했다. 앨라배마에 온 일본사람들의 점잖고 예의바름이 좋아서 혼자서 그들의 언행을 자세히 주시하며 배웠다.

그는 남편이 연장자라며 깍듯이 예우했다. 내가 한국인이라 했더니 한국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여전히 일본인이었다. 짖궂은 사위가 자신은 스코티쉬 독일계라 하자 이번에도 역시 그의 인사는 “하이” 에 어울리는 일본인 행동거지였다. 일본인으로 다가온 앨라배미안을 만난 우리가족은 그와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세상은 좁고 인종의 벽이 무너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밤이 늦도록 우리는 사람의 만남을 즐겼다.

국적과 관습이 융화되어가는 세상의 변화를 느꼈다. 외계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의 만남에는 감정의 교류가 소중했다. “나누 나누”로 만났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고니찌와”로 만났던 토박이 앨라배미안이 정겨운 이유는 거대한 건물벽에 반사된 또 하나의 건물이 낯설지 않았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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