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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이민사 유물들 어디로 가야 하나

이종호/논설위원

요즘 한국엔 사립박물관이 많다. 200개가 넘는다. 그중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은 소장 전시품 수준이나 관리 시스템, 지명도 등에서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호림박물관에 눈길이 간다. 대기업이 아닌 중견 기업주 호림 윤장섭(92) 선생이 기금을 출연하고 자신이 평생 모은 유물까지 기증해 최고 사립박물관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호림박물관은 1982년 서울 대치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1999년 신림동으로 확장 이전했고 2009년엔 강남 신사동에 분관까지 개관했다. 분관이 있는 호림아트센터는 15층의 연꽃 봉우리 모양으로 건물 그 자체로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소장품도 놀랍다.

국보 8점, 보물 46점이 보존되어 있고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도 9개에 이른다. 그밖에 도자기.회화.글씨.금속공예 등 1만5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혼자만 보면 무슨 재미가 있나요?" 박물관 개관 때 호림 선생이 한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아시아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건물 정면에는 암벡스벤츠그룹 창업자인 이종문(86) 회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90년대 박물관이 극심한 재정난에 처했을 때 1500만 달러를 기부해 폐관을 막은 것을 기려 그의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이종문 회장은 1970년 43세 때 이민 왔다. 여러 사업을 하다 55세 때인 1982년에 다이아몬드 컴퓨터라는 회사를 세워 80~90년대 실리콘밸리 벤처 신화를 일궜다. 기부를 하면서 그는 말했다. "나를 키워준 사회에 대한 보답입니다."

지금 LA 한인사회는 초기 이민 자료 2만여점의 한국행과 관련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보내야 한다는 쪽은 유물 보존처리의 시급성과 LA현지 보존시설 미흡 등을 이유로 든다. 반대쪽은 한인사회의 역사와 뿌리가 담긴 유물인 만큼 반드시 한인사회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보존처리 및 디지털화 작업 지원을 약속하며 직접 소장 속셈을 감추지 않는 USC, UCLA 등의 미국 대학까지 나서서 사정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든 일리는 있다. 그러나 논쟁의 이면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미묘한 속내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쪽은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별로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인'이라면 한국행은 절대 안 될 일이다. 우리 것을 왜 '남의 나라'에 주는가 말이다.

더하여 논란을 야기한 근본 원인이 하나 더 있다. 한인사회엔 이런 유물을 보관할 만한 변변한 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비단 이번 유물만이 아니다.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사료는 쌓여가고 있지만 정리 보존은 다들 관심 밖이다.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 건립이 추진되고는 있다. 이미 LA시로부터 박물관 부지(버몬트+6가 시영주차장 부지)를 50년간 무상 장기임대해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몇몇 한인 사업가들은 50만 달러씩의 기부도 약정했다.

하지만 전체 공사비 600만~1500만 달러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커뮤니티 차원의 모금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도 먼저 한인사회 전체의 공감부터 받아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결국 사업은 이런 저런 이유로 기약없이 미뤄지고 이민사 유물은 여전히 여기저기 떠돌고 있다. 참고로 과거 이런 식의 커뮤니티 일에 10만 달러 이상 모금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갈 곳 못 찾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한인사회의 소중한 유물들을 보면서 왜 우리 가까이엔 호림 선생, 이종문 회장 같은 분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염치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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