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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60대 중반의 생일 잔치

김학천/치과의사

가깝게 살면서 가끔 모이는 이웃 그룹이 있다. 미리 약속해서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속칭 번개모임으로 모인다. 누구든 당일 연락해서 모두 시간이 맞으면 모인다 해서 우리끼린 '5분대기조'라 부른다.

다른 모임이 다 그렇듯 만나서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각자 삶의 일부를 공유한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로 잘 모이는 집은 따로 있다. 여러 여건이 편리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그 집에 더 많은 신세를 끼치게 한다. 항상 빚을 진 느낌으로 부담을 갖고 있던 차에 지난 달이 그 집 부부가 같은 달 생일인데다 마침 아내 생일까지 겹쳐 잘됐다 싶어 합동생일잔치로 대접하겠다고 모두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창 더운 여름날 우리 집 에어컨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밖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한 이틀 후인가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조심스레 나의 초대를 자신이 대신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우연찮게도 그분의 부인도 같은 달에 생일이라 밖에서 경비 들이지 않고 자기네 집에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였다. 모두들 감사히 동의했다.

예정된 토요일 저녁 한 가족만 빼고 모두 모였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케이크를 내오는데 흔히 보던 서양식 케이크가 아니었다. 백설기로 된 우리네 전통 떡 케이크였다. 참 인상적이었다.】〉〕 백설기 전통 떡케이크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하고 촛불끄기를 네 번이나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아내 생일이 모두 같은 달에 있을 수가 있느냐며 인연치고는 참으로 특별하다고 했다.



생일 아닌 한 부인에게 이참에 생일 바꿔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농담을 했더니 같은 달 생일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생일상 준비를 하지 않겠느냐면서 나중에 축하를 혼자서 독차지 하겠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한데 그 중 제일 연장자가 생일이 즐겁긴 하지만 나이를 인식하게 되니 반갑지만은 않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70줄인 한 분만 빼고는 대부분 60대 중반 전후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당연한 섭리여서 결코 슬퍼할 일은 아니지만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회한에 빠져 조금은 울적하거나 어깨가 처질 때도 있다.

'믿음의 엔진' 저자 루이스 월포트 교수는 "즐겁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나이 들고 보니 허무하진 않아도 약간은 우울하다"고 했다. 그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슬퍼서라기보다 자신이 비생산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대부분 노인들은 힘없는 얼굴을 하다가도 누군가 지나간 과거 자신만의 소중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목소리도 높아지는지 모른다.

하긴 늙음과 상관없이 삶의 대열에 앞장서 정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더러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화려한 꽃잎도 제 날이 오면 떨어지는 것처럼 세상 이치에는 특혜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잘 산다는 것은 살아온 날 수가 아니라 지내온 세상 공기를 얼마나 더럽히지 않고 잘 살았나에 달렸을 게다.

그러고 보면 살아 온 세월만큼 움켜쥔 것도 많았겠지만 이제 떠나갈 자리로 다가가면서 조금씩이나마 내놓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그나마 맥없이 떨어진 그 꽃잎이 거름이라도 될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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