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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막말의 사회, 욕설의 정치

김완신/논설실장

중국 당나라는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인재등용의 판단 기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두었다. 용모, 말씨, 글씨, 판단력 등 4가지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다의적이기는 하지만 용모, 즉 생김새나 풍채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말씨, 글씨, 판단력은 후천적 노력으로 개발되고 습득된다. 학습에 의해 결정되는 3가지 중에서 말씨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말씨를 인재선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태 이후 막말과 욕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만나주지 않는다고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고,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에게 그대로 굶어 죽으라는 막말도 한다. 이러한 욕설과 막말은 개인적 울분의 차원이 아니라 공공의 분노 표출로 종종 미화되고 포장되기도 한다. 그래도 욕은 욕이다. 결국 욕에서 읽혀지는 것은 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저급한 인격일 뿐이다.

미국에서도 정치인들의 설전에 욕이 등장한다. 지난 2012년 오바마케어 시행을 두고 보수와 진보의 이견이 첨예할 때 법과대학원에 다니는 한 여성이 피임도 건강보험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보수언론인 러시 림보가 그 여성을 '잡년(Slut)'이라 지칭하면서 "당신이 성관계 하는데 우리가 피임을 제공할 이유는 없다"고 언급해 논란이 커졌다. 결국 림보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손상된 이미지는 쉽게 해복되지 못했다. 더욱이 건강보험개혁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 목소리는 '잡년' 논쟁에 묻혀 버렸다.

말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만든 소통수단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 말이다. 말을 글로 옮길 수는 있지만 말이 갖는 '감정'을 모두 담지는 못한다. 말은 가장 직설적인 소통수단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런 특성이 치명적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말이 상대를 헐뜯고 위해하는 욕이 되면 그보다 더 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오가는 욕설을 보면 최소한의 예의도 찾기 어렵다. 특히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 상대 진영에 퍼붓는 욕설은 면죄부를 받은 듯 착각한다. 이제는 욕에도 내성이 생겨 듣는 이들은 무감각해지고, 욕하는 사람들은 더욱 사악한 말을 만들어 입에 담는다.

욕설의 피해는 크다. 신체적 폭행은 통증이 가라앉으면 잊혀지지만 말로 가한 폭력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오래도록 남긴다. 특히 공인의 욕설과 막말은 사회전반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막대하다.

욕이 남긴 고통은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학식과 인품이 높아도 이를 표현하는 통로인 말씨에 품격이 없다면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 더욱이 욕이 사용되면 전후 상황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인격에 가해지는 손상을 막을 수 없다. 그리스 격언에 '자신의 품격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떨어뜨리고 싶으면 욕을 하라'는 말도 있다.

국문학자이면서 민속학자인 김열규 교수는 저서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욕에도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해악과 기지가 담겨있어야 '욕'이고, 그렇지 않으면 '쌍욕'이 되며 이보다 더 심한 욕은 '악매'로 분류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얌치'를 갖추고 사리의 옮고 그름을 분별하는 '경위'가 바른 욕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만 쌍욕과 악매는 결국 개인과 사회를 망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민속학적으로 욕을 분석하기 위해 책을 썼지만 '되도록 욕을 하지 않기 위해 욕에 대해 알리고', '욕을 안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고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은 말에서 나오지만, 말이 욕으로 바뀌면 저주와 멸시가 생겨난다.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잔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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