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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중앙일보 홍두영 초대사장 “난 영원한 중앙일보맨”

“중서부 대표 1등 신문…이제는 뿌듯”

“내가 오히려 중앙일보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카고 중앙일보가 없다면 내 과거도 없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조선, 동아, 경향신문 등이 시카고에 들어왔다가 문을 닫고 떠났습니다. 그 만큼 어려운 시카고에서 중앙일보가 이제 1등 신문이라는 것은 중서부 한인들은 누구나가 알고 있고 당시 경쟁사 전 사주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중앙일보를 중서부 1등 신문으로 올려놓은 임직원들에게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1979년 6월12일 오후 시카고 다운타운 북쪽 어빙팍. 3천 스퀘어피트 넓이의 건물에서 우렁찬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1년여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카고 중앙일보 창간호(24면)가 인쇄됐다. 이를 지켜보던 30대 후반의 홍두영 초대 사장의 머리에는 경영 전략이, 마음에는 뜨거운 열정이 끓어 올랐다. 이날 고(故)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을 비롯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홍석현 현 회장, 김행오 미주본부장, 김건진 워싱턴특파원, 김옥조 동경특파원 등 한국 본사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홍두영 초대 사장의 열정에 감탄했다.

“당시 시카고에는 71년부터 선점하고 있던 한인 일간지가 있어 후발 주자가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 그러나 대부분 한인들은 또 하나의 신문사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 그런데 내가 신문사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던 중 성홍재 본사 관리국장이 시카고에 와 있으면서 중앙일보를 맡을 사람을 찾고 있었어. 나를 포함해 6명이 후보에 올랐고 어느 날 나한테 연락이 왔어. 그게 1978년 초야.”

홍두영 초대 사장이 본사로부터 초대 지사장으로 임명 받은 것은 1978년 4월. 그는 바로 허영진 편국국장을 중심으로 권숙일 제작국장, 김영진 기자 등 4명과 함께 시카고 중앙일보 기틀을 마련했다. 그 해 7월 한국 본사를 방문, 이현우 전 대표이사 겸 전무를 만난 뒤 편집 및 제작 등 2주일에 걸쳐 신문 발행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이에 앞서 16면을 발행할 수 있는 인쇄기계 구입, 카메라와 사진을 처리할 수 있는 암실 설치 등 홍 초대 사장은 현지에서 신문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하나씩 준비해 갔다.



“창간호가 발행되기 전까지 LA 도움을 받아 기사 1면을 시카고 판으로 바꿨다. 광고는 시카고에서 수주하는 것은 모두 실을 수 있었는데 중앙일보가 생기고 나서 경쟁이 시작돼 ‘앉아서 받던 광고는 서서 받고, 서서 받던 광고를 뛰어가서 받아야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당시 직원들이 열심히 뛰었어.”

드디어 1979년 6월12일 미시간 호수 주변 레익쇼어 길를 끼고 높게 솟아오른 시카고 마천루를 1면 사진으로 한 중앙일보 ‘중부 미주판’ 창간호가 발행됐다. LA와 뉴욕에 이어 시카고가 중앙일보 미주 3번째 지사로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순간이다. 2면에는 톰슨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와 제인 번 시카고 시장, 김용식 미주대사와 이경훈 시카고 총영사가 축하 인삿말을, 한인사회에서는 박해달 씨가 한인회장으로 창간호 발행 축하 인사를 남겼다. 그 외 각계각층의 인사들로부터 중앙일보에 바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창간호 발행을 축하하러 온 홍진기 회장은 ‘사람 관리를 잘 할 것’을, 이현우 대표이사는 ‘신문에 얼굴을 많이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는데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 얼굴이 보여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이야기지. 창간호가 나가면서 우리보다 8년 먼저 시작한 경쟁지도 바짝 긴장했어. 중앙일보가 발행되고 목사님들의 강력한 권유로 시카고 최초로 ‘종교판’을 만들었어. 이후 제보가 들어왔지만 중앙일보는 안 쓴 것도 많아.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남의 얘기만 듣고 쓰지 말라고 했어. 우리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야. 먼저 쓰고 나서 아님 말고, 나중에 사과하면 되지 하는 그런 식의 기사는 안 돼. 당한 사람은 평생이 가는 거야. 지금처럼 말야. 중앙일보는 그래야 해. 1등 신문답게.”

78년 4명으로 시작한 시카고 중앙일보는 창간호가 나올 때는 직원이 16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대부분이 중앙일보 출신이다. 당시 사옥은 시카고의 어빙팍과 엘스톤길 교차로에 위치, 한인회관으로 쓰였던 건물(3559 W. Irving Park)로 홍두영 초대 사장의 소유였다.

“3년여의 짧은 시간동안 중앙일보를 경영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야. 경제적으로 잃은 것도 있지만 그 보다 내가 얻은 것이 더 크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후배들이 기쁨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 남을 아프게, 힘들게, 찍어 누르기보다 이민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그리고 기쁨을 주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35년의 결과가 지금 중서부 1등 신문으로 나타났다. 기쁘고 감격스럽다. 영원한 중앙일보맨으로 작지만 늘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뒤에서 후원하겠다.”

홍두영 초대 사장은 현재 시카고장로성가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시카고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2012년 10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시카고 한인사회의 영성을 알리기도 했다. 내년 10월에 한국 2차 방문을 계획 중이다. 부인 홍양식 여사와의 사이에 딸 은준(해군 중령) 씨와 아들 선학(뉴욕의 밴체 캐피탈 회사 부사장) 씨를 뒀다. 임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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