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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성장과 도약’… 숨가쁘게 달려온 기적의 현장

250여명이 10여만명으로 급성장
현대·기아 진출로 ‘코리아’ 빛내

“한인회관 건립 등 고비 때마다
단결과 화합으로 ‘도약’ 일궈내”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지난 40년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명실공히 동남부 한인사회의 중심지이자 미주 한인사회의 새로운 거점으로 우뚝섰다. 지난 20년간 80% 이상의 인구증가율을 기록하며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숨가쁘게 달려온 애틀랜타한인사회의 40년 발전사를 살펴본다.

한인회의 태동

애틀랜타 최초의 한인 이민자는 1891년 에모리대로 유학온 윤치호 선생이다. 그러나 그 후 이렇다할 한인 이민자는 없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한인 인구는 유학생과 자영업자 등 250여명에 불과했다. ‘애틀랜타한인이민사’에 따르면 1968년 10월 15명의 한인들이 애틀랜타한인회를 창립했지만 1970년대초 활동을 중단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듭했다.

그 뒤,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74년 애틀랜타한인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해 한인회재건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듬해 안낙영 조지아스테이트대학(GSU) 교수를 한인회장으로 선출했다. 이 때는 또 다수의 한인 간호사들이 조지아주로 취업이민을 오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부족한 조지아주는 타주 자격증만으로도 간호사 근무가 가능했었다. 부부가 함께 이민와 아내는 간호사로, 남편은 일하러 나가면서 방직공장, 마켓, 담배공장 등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돈을 모은 한인들이 동양식품점과 중국식당, 가발가게 등을 차리며 비로소 한인상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1년 애틀랜타한국학교가 개교했고, 1987년부터 도라빌을 중심으로 ‘뷰포드 한인타운’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올림픽과 한인사회의 도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미주한인사회는 물론 전세계에 애틀랜타를 알린 이정표였다. 한인들은 올림픽후원회를 결성하고 통역과 안전유지 등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올림픽은 또 한인타운에 ‘올림픽 특수’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올림픽을 계기로 I-75, I-85, 400번 도로 북쪽 등이 속속 개발되면서 대형 주택단지와 쇼핑몰이 생겼고, 한인상권도 한층 발전했다. 애틀랜타에 37년 거주한 이승남 당시 한인회장은 “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 애틀랜타 특수 기대로 이곳이 새로운 주거지역과 투자지역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며 “올림픽 특수 기대심리에 1992년부터 한달에 한인업소가 10여개씩 생겨나기도 했다. 1995년에는 한인업소가 500개였는데 1996년 6월에는 약 600개로 늘어났다”고 회고했다. 이같은 올림픽 특수는 대회 종료후에도 이어져 세탁소, 뷰티서플라이, 도매업 등 한인업소의 대형화, 다양화가 이어지고 각종 협회가 만들어졌다.

도라빌 한인회관 시대

한인사회 성장으로 한인회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인회관건립위가 1980년 발족된 이래 17년만에 한인회관 구입이 가능해졌다. 56만달러에 건물을 매입했고, 이중 애틀랜타 한국학교가 21만달러를 내놓는 등 한인사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도라빌 뷰포드 하이웨이에 자리잡은 도라빌 한인회관은 3.5에이커 대지에 건평 1만sqft 규모로 한인회 뿐만 아니라 도서관, 노인회, 문화공간 등을 갖춘 한인단체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애틀랜타에 30여년 거주했으며 당시 건립위 사무총장을 맡았던 은종국 전 한인회장은 “한인회관 매입은 이민생활 가운데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 한인들이 모두 화합해 큰일을 해냈다”고 회상했다.

기아·현대차 진출

나날이 확대되어가던 애틀랜타 한인사회에 또 하나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2005년 현대자동차가 앨라배마공장을 건설하고, 2009년 기아자동차가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진출한 것이다. 애틀랜타 한인타운에서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의 지역에 현대차와 기아차가 들어서고, 50여개 지상사와 협력사들이 동반 진출해 조지아가 전통적인 ‘바이블 벨트’에서 ‘자동차 벨트’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미국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수천개의 일자리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동남부 지역에 ‘코리안 브랜드’의 성가를 높였다.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는 “기아자동차 진출은 한국과 조지아의 경제우호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진출은 2011년 체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조지아, 앨라배마와 한국과의 결속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됐다.

한인 정치력 신장

애틀랜타 한인사회는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연방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한인인구는 2000년 2만8745명에서 2010년 5만2431명으로 82% 증가했다. 타주에서는 볼수 없는 높은 인구성장률이다. 한인단체들은 애틀랜타 지역의 한인인구를 1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인사회 규모 확대는 정치력신장으로 이어졌다. 2010년 박병진씨가 한인 최초로 조지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12년부터 3년간 조지아,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에서 한국운전면허증 인정협정이 잇따라 체결됐다.

한인회관 노크로스 시대

2013년 한인들의 보금자리인 도라빌 한인회관이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폐허가 됐다. 하지만 불행도 잠시, 새 한인회관을 건립하자는 한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인타운의 중심지가 도라빌에서 둘루스로 옮겨진 상황에서, 귀넷에 새 한인회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김백규씨가 위원장을 맡은 한인회관건립위원회는 불과 8개월만에 150만달러를 모금했고, 지난 6월 245만달러에 노크로스 새 한인회관 건물을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총 9.2에이커의 부지에 4만 6200㎡ 규모인 새 한인회관은 미주한인사회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손꼽힌다. 새 한인회관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행사를 계기로 한인들에게 공개되면서 공식적으로 노크로스 시대를 열었다.

애틀랜타에 38년 거주한 김백규 전 건립위원장은 “한인사회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구가 많아질수록 단결, 화합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며 “한인단체와 기업들이 한지붕밑에 모여 다같이 화합하고 일할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한인사회가 나아갈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원·권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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