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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용장' 김점곤 … 6·25 전세 뒤집은 다부동 전투 영웅

[조인스] 기사입력 2014/09/29 11:32

[삶과 추억] 91세로 타계한 예비역 소장
낙동강 전선 뚫고 북상 진격해
맥아더 인천상륙작전 성공 도와

백선엽 장군이 가장 아낀 부하-좌익 몰린 박정희 구명 나서기도
김점곤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속내를 털어놓던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장군과 시인 구상 등을 ‘술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점곤 장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속내를 털어놓던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장군과 시인 구상 등을 ‘술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중앙포토]

28일 91세로 별세한 ‘김점곤’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기껏 기억을 한다 해도 ‘전 경희대학교 부총장’이라는 타이틀을 먼저 떠올린다. 학자로도 그는 유명했다. 『Korean War』라는 영문서적으로 국내외에서 1950년의 6·25전쟁 전문가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이기에 앞서 그는 아주 뛰어난 군인이었다. 60여 년 전의 전쟁, 신생 대한민국이 용케 낙동강 전선에서 명맥을 보전한 뒤 가까스로 일어설 무렵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 총사령관이 기획한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질 때이기도 했다.

낙동강 전선에서는 국군 1사단이 주목을 받았다. 김일성의 군대가 막바지 저항으로 전선을 낙동강에 묶어 두려던 참이었다.

2010년 6·25 참전 노병이 한자리에 섰다. 왼쪽부터 이덕빈 예비역 소령, 황대형 예비역 상사, 김국주 예비역 소장, 백선엽 예비역 대장, 김점곤 예비역 소장, 최대명 예비역 소장, 전자열 예비역 소장. [중앙포토]

2010년 6·25 참전 노병이 한자리에 섰다. 왼쪽부터 이덕빈 예비역 소령, 황대형 예비역 상사, 김국주 예비역 소장, 백선엽 예비역 대장, 김점곤 예비역 소장, 최대명 예비역 소장, 전자열 예비역 소장. [중앙포토]

대구에 있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는 마음이 급했다. 맥아더 총사령관이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이 북상하지 못하면 인천상륙작전은 그만둔다”고 했기 때문이다.

국군 1사단의 사령관은 백선엽 준장, 그 예하의 12연대는 김점곤 중령이 맡고 있었다. 김일성 군대의 사활을 건 몸부림이 극에 달했다. 전선을 뚫기가 몹시 어려웠다. 맥아더는 낙동강 전선에서 북상을 하지 못하면 인천을 통해 뭍에 올라온 미 해병대가 고립을 면치 못하리라 봤다. 인천을 포기하면, 다음 상륙 예정지는 군산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1950년 9월의 어느 날 김일성 군대의 낙동강 전선은 허물어졌다. 혈로를 뚫고 국군 1사단 12연대장 김점곤 중령이 12㎞를 북상했다. 대구 북방 팔공산 자락에서 경북 의성까지였다. 워커는 1사단 백선엽 장군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뚫었단 말이냐? 정말 대단하다”는 찬사였다.

미 8군이 유일하게 보유한 고사포 여단, 국군 1사단 12연대의 보병 전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전 덕분이었다. 김점곤은 아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북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 다음의 판세는 알려진 그대로다.

그는 일본 북지군(北支軍)에서 군인으로서 첫발을 디뎠다. 톈진(天津)을 비롯한 중국 화북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군의 소위였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징용으로 간 군대였다.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육사 1기로 광복 뒤의 우리 군대에 입문했다. 첫 임지는 춘천 8연대. 그곳에서 그는 육사 2기로 임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휘했다. 중대장과 소대장의 신분이었다. 그로부터 늘 술을 얻어 마시던 박정희 소대장이 하루는 “산판(벌목)을 하는 삼촌이 술을 사러 온다”고 했다. 이름은 이재복. 그는 남로당의 군사책을 맡아 박정희의 좌익 연루를 이끈 주역이다. 박정희는 그로 인해 결국 숙군 때 사형판결을 받았다.

박정희가 결코 좌익이 아니라는 점을 가장 잘 알았던 김점곤은 구명에 나선다. 백선엽 당시 정보국장의 배려로 박정희는 살아난다. 정보국 지하 감방이 있던 서울 명동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서 풀려나 용산의 관사로 돌아온 박정희를 이튿날 아침 처음 찾아간 사람이 김점곤이다. 둘은 그 자리에서 서로 얼싸안은 채 울었다고 했다.

29일 아침에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한 백선엽 장군은 망연자실했다. 빗물이 맺히는 창 너머로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김점곤 장군은 그가 가장 아끼는 부하였다. 백 장군 밑에서 다부동 전투, 북진 첫 공세 전환, 평양 첫 입성, 지리산 빨치산 토벌, 2군단 재창설, 휴전선 단독방어를 위한 병력 40만의 1야전군 출범 등을 이끌었다. 모두 대한민국 육군의 굵직한 토대를 이룬 사건들이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집필을 위해 나는 고인의 자택을 여러 차례 찾아가 위의 이야기를 들었다. 백 장군은 그를 ‘빈틈없는 용장(勇將)’으로 설명했다. 싸움터에서 용기는 기본이다. 내 목숨 던져야 할 때 던지는 용기. 그러나 그만으로는 부족하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지혜가 먼저 필요하다.

낙동강 혈로를 뚫듯이 그는 또 저세상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빈틈을 보였다. 남겨야 했던 6·25전쟁의 교훈을 고스란히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쟁을 쉬이 잊는 우리의 탓이다. 그는 변함없이 영용(英勇)했던 큰 군인, 시대의 가벼움 놓으시고 이제 고이 잠드시길…. 그의 발인식이 열리는 1일은 마침 건군 제66주년 국군의 날이다.

유광종 도서출판 ‘책밭’ 대표(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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