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김정은 위원장 한달째 두문불출 … 불 붙은 대북 첩보전쟁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두문불출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건강 이상설’ 정도로 간주됐죠. 마지막 공개활동(3일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직전 양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이 관영TV로 드러난 게 근거였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 당국이 중국·러시아의 정형외과 의사가 비밀리에 방북한 정황을 포착한 것도 그랬습니다. 다리 관절 등에 상당한 이상이 있는 듯하나 ‘권력 공백’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은 빠르게 확산되는 중입니다. 건강 문제를 넘어 유고(有故)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지난 주말에는 베이징의 외교가를 중심으로 쿠테타설까지 등장했죠.

북한 군부 핵심인사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해 김정은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스토리인데요. 그 주역이 조명록 북한군 총정치국장이란 대목을 접하곤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조명록은 이미 2010년 11월 사망해 장례까지 치른 군부실세기 때문이죠. 누군가 루머를 만들면서 최소한의 검증조차 못해 저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뒤늦게 “죽은 조명록이 아니라 현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라는 수정판이 돌았지만 이미 떨어진 신뢰를 되찾긴 힘들었죠.



죽은 조명록 쿠데타? 베이징발 헛소문

 어제는 서울 증시와 인터넷 공간에 김정은의 병세가 지속적으로 악화된다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란의 이슬람 관련 매체를 근거로 제시했죠. 후계자에서 밀려난 형 김정철에 대한 관리가 강화됐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까지 덧붙여졌습니다. ‘뇌어혈(<8111><6DE4>血)’이란 병명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이런 ‘찌라시성’ 대북첩보는 북한체제의 폐쇄성에 기인합니다. 북한 체제를 들여다 보는데는 아직도 ‘크레미놀러지(Kreminology)’란 기법이 동원됩니다. 옛 소련시절 관영매체에 실린 사진에서의 위치로 권력 핵심 인물의 부침을 판단하고, 정책을 분석·예측했던 방법입니다. 평양에서 열린 정치행사의 자리 배치나 김정은과의 거리 등을 토대로 실세여부를 판가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한동안 자취를 감추면 대북 정보 분석가들은 불안해집니다. 이 때 누군가 슬슬 발동을 거는 겁니다. 평양 권력 동향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에선 근거없는 첩보도 일파만파로 번집니다. 정보당국이나 언론 모두 경쟁적일 수 밖에 없는거죠.

2008년 8월 중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때도 일파만파 소문이 번지면서 결국 사망설까지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정부 핵심관계자는 “양치질은 혼자 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해 그의 병세가 매우 위중함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 해 11월 축구경기장에 등장해 건재를 과시하자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뇌졸중의 후유증인 듯 팔과 다리 등의 움직임이 불편한 것 말고는 식물인간이었다고 볼만한 징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루머는 호사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때론 한국과 서방의 정보기관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트리기도 하죠.

한·미, 역정보 흘리고 북한서 역이용도

전직 대북정보 관계자는 “과거 김정일의 동정이 파악되지 않을 때 슬쩍 사망설을 띄우면 평양 쪽이 어떤 형태로든 움직이더라”고 귀띔합니다. 그 때 후속동향을 추적하면서 추가 첩보 수집에 집중한다는 겁니다. 2003년 5월 불거졌던 북한 고위관리 길재경(노동당 부부장)의 서방망명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던 그의 동향을 추적하던 중앙정보국(CIA) 서울 요원이 망명설을 퍼트렸고, 국내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결국 중앙일보의 특종으로 이미 3년 전에 숨져 평양에 묻혀있다는 사실이 묘비 사진과 함께 공개된 후에야 진화됐습니다.

 북한이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거나 부추기며 동향을 떠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1987년 말 김일성 주석의 사망설이 나돌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유고사태가 벌어졌다는 관측이 힘을 얻어가던 시점에 최전방 북한군 초소에 조기가 게양됐다는 관측 결과가 보고됐고, 합참의장이 국회에서 보고까지 했는데요.

김일성은 며칠 뒤 방북한 몽골 대통령을 맞이하려 순안비행장에 나타나는 깜짝쇼를 벌였습니다. 한국 정보당국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죠. 이번 쿠데타설, 식물인간설 등에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입니다.

 어느 나라든 정보를 다루는 기관은 속성상 최고권력자의 정책 결정에 필요한 ‘결정적 단서’를 필요로합니다. 정보 관계자는 “의미있는 첩보가 입수되면 정보당국 상층부에선 추가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닦달하게 된다”며 “건강이상설이나 유고설이 나오면 그야말로 첩보전이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북정보전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우리의 정보전에 대응한 북한의 반탐(反探, 간첩을 색출하는 작업)공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은밀히 활동하던 국군정보사령부 영관급 대북정보 요원의 신분이 노출돼 북한에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정보 베테랑들 사이에선 그의 이름을 따 ‘CKW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인데요. 극악한 고문 끝에 우리 대북관련 정보를 모두 털어놓은 뒤에야 6개월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그를 살려보낸 배경을 미심쩍어한 당국이 심문한 결과 간첩임무를 부여해 내려보낸 사실이 드러나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깜깜이’ 대북정보망 복원될지 주목

 1990년대 말에는 북한의 핵 추정 시설에 잠입해 토양 샘플을 수집해온 요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시도 아닌, 평시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당시 이들을 도왔던 조선족 청년들이 나중에 체포돼 처형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안 안보전시관에는 대북정보 수집 등에 나섰다 순직한 요원을 상징하는 48개의 별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정은의 건강을 둘러싼 이번 첩보전은 우리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정보 당국은 김정일 사망이나 북핵 실험 같은 대북정보에 ‘깜깜이’였다는 비판을 받아온게 사실입니다. 정보의 세계에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vage in, garvage out)”는 금언이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의 폐해를 지적하는 얘기입니다. 이번엔 퍼즐을 맞춰나가듯, 검증되지 않은 첩보를 신뢰할만한 정보로 창출해낼 수 있는 우리 국가정보기관을 기대해봅니다. 올바른 대북정보가 바람직한 대북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루머가 난무하는 상황인 만큼 김 위원장이 언제 어떤 자리에서 건재를 과시하느냐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건강이상설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나이는 아직 서른에 불과합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