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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성조기 13줄의 의미

이종호/논설위원

아들이 11학년이 되면서 미국역사(AP US History)를 배우고 있다. 교과서를 보니 1000페이지가 넘고 글씨도 깨알 같다. 어휴, 저걸 언제 다 보나.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린다. 미국 역사, 300년도 채 안 된다. 그런데도 무슨 내용이 이렇게 많은가 싶다. 반만년 한국 역사 같았으면 얘깃거리도 되지 않을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다 담아놓은 것 같다.

아들의 역사책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미국을 배운다. 역사와 제도와 인물과 그리고 문화까지. 그렇다면 뒤늦게 미국에 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온 우리 어른들은? 영주권 따고 시민권 따서 사실상 미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과연 얼마나 미국을 알까? 아니 알려고 하기는 하는 걸까?

일례로 미국 국기인 성조기(星條旗, The Star-Spangled Banner/The Stars and Stripes) 하나만 해도 그렇다. 50개 별이 50개 주를 뜻한다는 것은 알아도 빨갛고 흰 13개 바탕 줄이 건국 초기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3개주를 의미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 13개 주 이름을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더 드물다.(13개주는 미국지도 위에서 부터 아래로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커네티컷,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메릴랜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주다.)

역사가들은 미국의 독립을 혁명이라 부른다. 혁명이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의미한다. 미국이 그랬다. 서로 다른 13개주 식민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영국에 맞서고 역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 자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를 가진다는 독립선언서는 그런 미국 정신의 결정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법과 제도 역시 이런 정신 하에 만들어졌다.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종교와 사상, 피부색을 초월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애쓰는 것 역시 이런 정신의 연장 선상이다. 물론 그 속에 우리 한인도 있다.



미주 한인 이민 역사가 11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이곳이 내 나라, 내 땅이라는 주인의식은 미흡해 보인다. 여전히 이민자로, 나그네로만 사는 것 같다. 물론 바쁘게, 분투하며, 열심히는 살아왔다. 2세들 잘 길러 주류 사회로 내보냈다. 정치력도 키우고 한인커뮤니티의 위상도 높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는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고 내 후손이 살아가야 할, 우리의 땅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언제까지 나그네로 살 것인가. 그러지 않으려면 미국을 알아야 한다. 품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그 출발점이다. 역사는 단순히 한 사회가 거쳐 온 변화의 모습 또는 그 기록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을 아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튼실한 동아줄이다. 너와 나를 '우리'로 이어주는 정신적 공감대다. 이민자들도 미국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르는 한인 없다. 세종대왕 김유신 이순신 장군 모르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웬만한 크리스천이라면 성경 속 이스라엘 역사는 줄줄이 꿴다.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을 모르는 기독교인 없다. 하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사에 대한 관심, 당연하다. 이스라엘 역사도 알아서 나쁠 것 없다. 하지만 이젠 그 반의반 만큼이라도 미국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땅에 살기로 한 이상 그것이 도리다.

엊그제 아들의 역사책을 보면서 14년 전 미국 올 때 챙겨왔던 미국 역사책 두어 권을 슬그머니 다시 꺼내놓았다. 아들 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왠지 그 정도라도 읽어 둬야 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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