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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문학] 마음의 눈으로 - 미셸 김

‘연탄 길’ 작가 이철환 씨가 한 팬더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팬더는 눈이 내리면 나무 위로 올라가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꼼짝않는다. 친구들은 저마다 “왜 저러고 굶고 있지?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팬더는 알고 있다. 그가 눈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 아기 팬다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눈이 그치길 기다리던 어느날, 굴속의 새끼들을 굶어죽일 수 없어 어미 팬더는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 자기가 찍은 발자국을 눈이 덮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성급히 먹이를 구해 돌아오는데, 자기 발자국 위에 찍힌 사람 발자국 2개를 발견한다. 그 발자국이 멈춘 곳은 아기 팬다를 숨겨둔 굴 앞이었다. 섬뜩하게도 숨겨둔 아기 판다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 어미 팬더는 눈만 오면 나무 위로 올라간다. 거기서 며칠을 굶더라도 꼼짝않고 눈이 그치길 기다린다. 눈위의 발자국은 팬더의 아픈 상처요, 자식을 잃어버린 공포의 상징이다. 그 누가 팬더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12월 생일이 가까운 어느날 카드가 배달 한장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가까이 태어난 나는 명절의 화려함에 묻혀 생일겸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시즌 제일 먼저 도착한 카드는 봉투에 남편의 성을 기재해 이름부터 생소했다. 그림은 크리스마스 카드인데 내용은 생일 축하겸 쌩큐 카드였다. “당신은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여인입니다!” 누구인지 기억을 짚어보니 3년 전에 있었던 나의 편견에서 파생된 오해가 생각났다.

C여인은 모자를 즐겨 쓴다. 한인마켓에서 마주쳐도, 모임에서 만나도 계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좀 지루하다, 멋없다는 오해를 할 즈음 어느 강의실에서 또 한번 마주쳤다. 강의가 다 끝난 마지막까지 기다려 문이 잠간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로 가까이 왔다. 그리고 아주 침울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작게 어렵사리 입을 연다. 가까이 마주한 그녀의 얼굴에서 뭔가 모르게 한번의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유방암 판정을 받고 키모테라피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울먹이며 조용히 말한다.



투병중인 그녀가 쓰고 다니는 검은 모자의 비밀을 알게돼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를 마음의 눈으로 봐주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나와 같은 또래의 중년의 여인에게 닥친 위기에 나도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진심을 읽었는지 그녀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도 곁들였다. 플로리다에서 시작하는 건강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지만 남편의 실직으로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고 했다. 나는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면서, 일단 자연치료 정보를 챙겨 주고 헤어졌다.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굴을 파고 칩거하고 분노하는 통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내 밖으로 나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죽음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그 누구도 그녀가 암 투병을 하는 절박한 환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노인들을 위해 악기와 노래로 재능기부를 하러 다닌다. 그녀가 나라면 어떠했을까 조용히 묻는다.

백화점 쇼 윈도우에 예쁜 모자와 스카프가 화사한 외출을 부추기는 봄이었던가. 문득 검은 모자의 주인공 C여인이 생각났다. 값도 보지 않고 두 세트의 모자와 스카프를 골라 예쁜 카드와 함께 우편으로 보냈다.

벼량 끝에 선 사람에게 어설픈 충고는 처녀가 산통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이사야 43장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라는 말씀을 인용했던 것 같다. 이 말씀은 내게 역경 속에서 붙잡고 일어서게 하는 지팡이 같은 귀절이다.

며칠이 지나서 전화를 받았다. 잠간의 침묵이 있은 후 저쪽 끝에서 훌쩍이는게 느껴졌다. 모자와 스카프, 그리고 용기를 주는 카드에 감동받아서 이틀을 울었단다. 그녀가 감동한 만큼 나도 마음이 촉촉했다. 꼭 살아서 씩씩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는 그녀 대신 아파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편견을 버리고 그녀의 입장이 되어는 보았다. 그 이후로 몇번의 위기가 있어 멀리서 전화로 기도하는 사이가 되면서 3년이 흘렀다. 다행스럽게 지금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더는 모자를 쓰지 않는다. 눈위의 발자국이 팬더의 상처인 것처럼, 모자는 그녀의 아픈 흔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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