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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방치된 유물과 9·11 박물관

구혜영/사회부 기자

최근 뉴욕에 다녀왔다. 제법 차가워진 가을공기에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LA와는 180도 달랐다. 바쁜 도심을 거침없이 휘젓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를 느꼈다.

이슬람국가(IS·이라크 급진 수니파 반군)의 뉴욕 지하철 테러 계획을 입수한 경찰들이 무시무시한 총기를 들고 경계를 서고, 각국 정상들의 잇따른 유엔본부 방문에 도로가 수도 없이 마비됐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그것조차 뉴욕이란 도시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뉴욕을 휴가지로 택한 이유는 박물관 때문이었다. 미국 제1의 도시답게 온갖 기억과 의미를 담아둔 장소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한 곳만 고르라면 올해 5월, 문을 연 9·11 추모박물관을 택하겠다. 전세계를 경악케 한 테러의 현장에 세운 추모박물관은 사실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비싼 입장료(24달러)를 내고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9·11 추모박물관에는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시간대별로 테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대통령과 뉴욕시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분초 단위로 설명돼 있다.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비행기 조종실을 점거한 후, 다급하게 신고하는 승무원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박물관 중심에는 무너진 잿더미 가운데서 꺼낸 월드트레이드센터의 기둥이 홀연히 서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사람이다. 박물관 정중앙에는 하늘을 의미하는 파란 바탕에 9·11테러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 벽 바로 위에는 '시간의 흐름이 결코 그대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란 문장이 붙어있다.

몇 걸음을 옮기면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붙여놓은 전단지부터 13년 전 생존자를 찾아 나섰던 소방관의 육성 인터뷰, 다시는 돌아오질 못할 가족들을 기다리며 전화 자동응답기에 남긴 메시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박물관은 9·11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두려는 듯 보였다. 그날 아침 발행된 지하철 승차권과 취소된 야구 경기티켓도 버젓이 박물관 한쪽을 차지했다. 소방관들의 때묻은 옷과 테러를 피해 달리다가 굽이 나간 여성의 하이힐까지도 진열장에 넣었다.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서류까지도 빳빳한 종이에 붙여서 그날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는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유치원생들이 그린 성조기가 한쪽 벽면을 차지한 이 전시실에는 '교육'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LA한인커뮤니티에서도 최근 박물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03년 복원공사 중 발견된 대한인국민회의 유물이 갈 곳을 잃고 골방에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 독립운동 1번지로 불린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은 10년 동안 전시품을 교체하지 못했고, 별도 직원도 없다.

9·11 추모박물관은 그날을 잊지 말자는 모두의 관심으로 세워졌다. 100년도 넘는 미주 한인 역사를 지킬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커뮤니티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는 것은 더 큰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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