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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업]디지털이 되살린 우정

모니카 류/방사선과 암전문의

4층짜리 과학관 건물이었나 싶다.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그 건물은 과학계통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었고 강의실 외에도 여러 개의 실험실이 있었다. 의예과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봄날, 화학 실험을 하다가 창문을 내려다 보았다.

봄날 오후의 교정은 화려했다. 어떤 꽃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꽃들이 만발했고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일찍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교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꽃과 인파의 흐름은 내가 참여할 수 없는 화려한 행렬이었다. 나는 갑자기 초라하기만 한 나를 만났다.

의예과 강의들은 나에게 지리하게만 느껴졌고 별 의미가 없었다. 암기해야 할 내용은 복잡하고 그 양은 엄청났다. 교실은 어두웠다. 강의실을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강의실이 학생들을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거의 매일 있었던 시험은 점수로 학생들을 가혹하게 심판했다.

그 시절 건물 밖 모든 것들은 아름답게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커멓게 하늘에 먹구름이 덮여 있어도, 비가 와도, 천둥이 쳐도 교실 밖의 세상은 찬란하고 행복해 보였다.



한마디로 나는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허송세월로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나는 임상학 즉 사람과 과학이 연관을 이루는 시기에 비로소 의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의학과 내가 오랜 시간을 허비한 후 드디어 인연을 맺게 됐던 것이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의과대학 시절을 뒤로 하고 미국에 와서 잃었던 학창시절을 다시 사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실상 오늘 내가 의과대학 시절을 자연스럽게 회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나에게 배달된 축복의 '보따리' 덕분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한 '인스턴트 메세징'을 통해 의과대학 시절로 되돌아 갔다.

컴퓨터의 침입을 애초 좋아했던 사람은 주위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의 앱 덕분에 나는 의과대학 시절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다. 리더십이 있는 친구가 동급생들과 대다수를 연결시킨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인스턴트 메세징'이라는 대화방식을 삶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아 외면해 왔었다.

그러나 의과대학 시절의 많은 동급생들과 그룹으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야기가 꽃 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떡집에 불 났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이런 '인스턴트 메세징' 사이트들은 이메일과는 달리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한 두번 정도 밖에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멀리 있던 동급생들이 디지털 시대의 대화창구를 통해 친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나의 신나지 않고 울적했던 의과대학 시절을 조금씩 재조명하게 됐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 내가 기억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면 과장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의과대학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들이 디지털 대화로 서로에게 정신적 위로와 기쁨을 주고 있다면 지금의 IT시대도 그다지 삭막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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