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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가고 싶은 모임, 가기 싫은 모임

이종호/논설위원

미국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10여년 전 한국은 분명히 그랬다. 원치 않는 술자리, 즐겁지 않은 모임, 내키지 않는 행사에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체면 때문에, 관계 때문에, 아니 더 솔직히는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다.

미국은 어떨까? 처한 환경에 따라 똑같이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 어디든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이상 이런저런 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 생활을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어떤 모임이든 개성껏 선택하고, 소신껏 결정하고, 형편껏 가고 말고 하면 되는 게 미국식이다. 그걸 두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지만, 설령 뭐라 그런들 대순가. 미국의 이런 분위기가 나는 좋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조직과 집단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 간다. 특히 한국 사람은 어디엔가 소속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산다. 관계나 소속감을 통해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에게 유달리 많은 모임들이 단적인 예다. 국가, 가족, 직장 외에 종교단체,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전우회 등 소속된 모임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갖가지 동호회나 협회, 단체도 즐비하고 요즘은 온라인 그룹에, SNS 친구까지, 넘치는 게 모임이다.

물론 소속되어 있다고 그 많은 모임에 다 참여하진 않는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시작해도 금세 흥미가 식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애정을 갖는 모임 한두 개 쯤은 누구나 있다. 나도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모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동기모임과 부부 공부모임이다.



동기모임은 LA에 와서 알게 된 대학 동년배끼리의 친목모임이다. 특별한 목적도 없고 규칙도 없다. 모임도 부정기적이다. 어쩌다 만나 얼굴 보고 먹고 마시고 시답잖은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지는 게 전부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어찌보면 참 시시한 모임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모임이 좋다. 이유는 단 하나, 편해서다.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녹고 머리가 씻어지기 때문이다.

부부모임은 그 반대다. 4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다른 연령의 부부 6쌍이 매달 정기적으로 모인다. 목적도 있고 규칙도 엄격하다. 참석을 못하면 가혹한(?) 벌칙까지 있다. 그래도 불평 없이 5년이나 잘 참여하고 있다. 이유는 보람이다.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임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모임엔 공통점이 있다. 구성원들이 별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더가 있지만 그래도 모두가 친구 같은 관계다. 친구란 수평관계를 전제로 한다. 서로의 생각을 들어주고 가치관을 인정해 준다. 배려와 용납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게 없으면 이미 친구가 아니다. 이런 모임에선 몸도 정신도 '힐링'이 된다. 늘 모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요즘 한인사회에서 삐거덕거리는 단체나 조직을 보면 또 그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 그런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물어본다. "왜 요즘 잘 안 나가세요?" 돌아오는 대답이 비슷하다. "설치고 나대는 사람들 꼴 보기 싫어서요." "군림하려 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게 핵심이다. 일부의 독선과 아집이 구성원들을 몰아내고 분란의 빌미를 만든다.

결론은 역시 소통 문제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속마음으로 들어오게 하라." 위대한 철학자였던 로마 현제(賢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일깨운 소통의 황금률이다.

그렇다면 나는 모임에서 어떤 구성원일까? 나 때문에 나온다는 사람까지는 바라지도 않거니와, 나로 인해 발길 돌리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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