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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평양에 가서 보니 북한도 코리아였다

[LA중앙일보] 발행 2014/10/10 미주판 25면 기사입력 2014/10/09 21:56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늦으셨네요. 30분 기다렸습니다. 또 늦으면 이 나라에서 당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서 '이 나라'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가이드는 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농담 같지 않았다. 1분 후 가이드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다니엘, 내가 너무 심했나요?" 태어나 처음으로 안도감의 극치를 나는 맛보았다. 하지만 30분 후 버스 밖 풍경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자 또 다른 가이드가 "안 돼요!"라며 나를 저지했다. 그러자 버스 안 일행이 일제히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하하, 또 걸리셨네."

적어도 내겐 긴장감보다는 흥겨움을 만끽하는 여행이었다. 도대체 평양에는 왜 갔느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쓴 기사를 본 북한 회사가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기사에서 나는 대동강맥주를 칭찬하며 한국 맥주보다 맛이 좋다고 주장했다.(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한국이 맥주 빼곤 거의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낫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방북 기회를 마련한 것은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조선 익스체인지(CE)라는 회사였다.

물론 나는 북한 체제의 '팬'은 아니지만 북한 속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는 북한에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발전이 이룩되는 데 뭐든지 조그마한 기여라도 하고 싶다. 어쨌든 북한은 아주 가난한 나라가 아닌가. 내가 선택한 강연 주제는 '언더도그(underdog)가 비즈니스 활동을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내 강연을 들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금이나 비즈니스 원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세계 시장 추세에 대한 연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한 주제였다.

하지만 사실 북한에서 기업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나라의 저변뿐만 아니라 중상급의 엘리트 사이에서도 그렇다. 방문기간에 수많은 증거를 목격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당국의 묵인하에 소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다. 평양 전역에서 고층 빌딩이 솟아오르고 있다. 특히 평양에 사는 외국인들이 '평해튼(Pyonghattan=평양+맨해튼)'이라 부르는 만수대가 그렇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군인들이다. 북한의 국영 매체들은 실제로 그들을 '군인건설자들'이라 부른다.

내가 평양에서 만난 제일 흥미로운 사람 중 한 명은 자신의 맥주회사를 건립하는 게 포부였다. 그는 북한 맥주 시장에 대해 엄청난 분량의 연구를 이미 했다. 북한에 통계자료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북한에는 현재 10개의 맥주공장이 있는데, 모두 라거(lager) 맥주를 생산한다. 에일(ale) 맥주로 차별화를 시도해보라고 그에게 권했다.

이 젊은 친구는 매우 똑똑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북한 상황이 좋아지고 남북 관계도 충분히 개선되면, 이 친구와 손잡고 최초의 남북합작 맥주회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데 정치 문제를 빼고도 다른 장애물들이 있다. 북한에 가서 직접 보니 지난 60여 년 동안 남북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모든 게 내게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이국적'이었다. 혼란스러운 체험이었다. 특히 언어 차이가 두드러졌다. 내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어떤 단어가 남한에서도 같은 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했다. 반 정도는 달랐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북한에서 '얼음보숭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에스키모'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공식 용어 '얼음보숭이' 대신 아이스크림 회사 이름인 '에스키모'를 선택한 것이다.

북한은 내가 아는 한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은 코리아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 할머니들은 '아이고' 소리를 냈고 사람들은 강변에서 소주를 마셨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내가 전혀 눈여겨본 일이 없는 일상적인 것들과 북한에서 다시 부닥친 것이다.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일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쉬웠다. 내 한국 친구들이 여기 와서 내가 본 것들을 볼 수 없다는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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