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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출판기념회가 무슨 죄인가

이 종 호/논설위원

출판기념회를 두고 말들이 많다. 한국 이야기다. 발단은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이다. 출판기념회를 빌미 삼아 돈을 갈취한다는 것이다. 아, 갈취라는 말은 취소다. 그냥 후원금 정도라고 해 두자. 엎어치나 메어치나 마찬가지 아닌가.

'수퍼 갑'의 노골적인 모금창구라는데 모른 체 하겠다? 큰일 날 소리다. 눈 밖에 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어떡하든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 그렇다면 맨입으로는 안 되지. 책값의 천 배, 백 배, 아니 열 배라도 들이밀어야 한다.

이래서 불거진 것이 작금의 출판기념회 파동이다. 부글부글,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국회에선 규제법 제정에 나섰다. 여당에선 아예 정치인 출판기념회 전면금지까지 결정했다. 정말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 씁쓸하다.

책을 낸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나도 책을 내 봐서 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책이라도 책 한 권 상재(上梓)한다는 것은 여간한 땀과 수고가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혼자 보는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읽어줄 대상을 떠올리며 특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과 지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료를 모으고 다듬고 글로 옮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써야 한다. 이 과정을 하나라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다. 자비출판이라면 비용은 또 어떻고. 그러니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저자 본인에겐 '출산'에 버금가는 감격이다.



그런 산고 끝에 나온 책, 당연히 기념하고 싶다. 자랑도 하고 싶다. "나 이렇게 열심히 썼으니 한 번 봐 주시오." 그게 출판기념회다. "그래 수고했소, 대단하오, 도대체 무슨 말을 썼는지 들어 보기나 합시다." 그렇게 찾아가 등 두드려 주는 자리가 출판기념회다. 이게 왜 문제인가. 오히려 권장해야 할 미풍양속 아닌가.

이게 변질이 됐다. 주범은 정치인들이다. 선거철만 되면 후다닥 급조해서 자신의 저서라며 내놓는다. 의도부터 불순하다. 얼굴 알리고 돈도 챙기겠다는 심사. 그것도 태반은 대필이란다. 그래 놓고 100% 자기가 썼다고 우긴다. 이런 양심불량이 더 문제다. 그리고는 출판기념회를 빙자해 모금까지. 이런 출판기념회야말로 책에 대한 모독이다. 지성에 대한 능멸이고 선량한 모든 저자들에 대한 테러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연일 새 책이 나온다. 시인, 수필가 같은 문인들이 책을 쓰고 의사, 변호사, 회계사도 목사, 주부, 사장님도 다투어 책을 낸다. 그리고는 출판기념회를 연다. 물론 귀찮다고, 폐 끼치기 싫다고 안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한국 같은 허세부리기는 별로 없다. 좁은 커뮤니티,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처지다. 괜히 폼 잡을 일 없고 정치할 일도 없다. 그저 책이 나왔으니 지인들 얼굴 한 번 보면서, 따뜻한 밥 한 끼 먹자는 조촐한 자리가 한인사회 출판기념회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얼마나 정겨운가. 그러니 내용이 어떠니, 수준이 어떠니 속 좁게 책잡을 일 아니다. 꼴사납다며 눈 흘길 일은 더욱 아니다.

열심히 책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한다. 지식인이 글 쓰고 책 내는 것 당연하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 그게 지식인의 역할이고 사명이었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저자인 강명관 교수는 조선을 만든 것은 오로지 책벌레들이었다고 했다. 조선만 그랬을까.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죽어라 읽고 죽어라 썼던 사람들, 그들이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견인했다.

쓰고 싶은 사람, 더 열심히 쓰시고 책 내고 싶은 사람, 얼마든지 내시라. 그리고 출판기념회도 하시라. 지식인의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한줌도 안 되는 알량한 정치인 몇몇 때문에 끊어져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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