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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 많은 '우버 택시'…창업자는 억만장자 등극

우버 CEO 트래비스 칼라닉

LA서 나고 자란 38세 사업가
44개국 170곳서 우버 서비스
기업가치 180억달러 수직 상승
모든 운송 배달수단 공유가 꿈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400대 부호에 새롭게 진입한 기업가가 있다. 우버(Uber)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트래비스 칼라닉이다. 그가 개발한 우버 서비스는 세계 각국에서 불법 택시 논란을 일으키며 시끄럽지만 그는 38세의 나이에 38억달러의 자산가로 400대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버 택시는 검색부터 요금결제까지 스마트폰 앱 하나로 해결해주는 간편한 서비스다.

스마트폰에서 전용 앱을 열면 주변에 있는 우버 차들이 지도에 즉각 표시된다. 이어 목적지를 입력하면 예상 요금과 함께 그곳까지 타고 갈 우버 차의 운전자 이름.얼굴.차종과 이용자들이 평가한 별점까지 뜬다. 신청한 지 대개 5분 안에 차가 도착하는데 목적지를 설명할 필요도, 팁을 얼마 줄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차에서 내리면 미리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에서 요금이 빠져나간다. 업체 간 경쟁으로 인해 가격 또한 크게 내려가 우버의 여러 서비스 중 하나인 '우버X'를 이용하면 일반 택시 반값으로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이 늘 수 밖에 없는 서비스다. 우버가 승승장구하고 있음은 각종 수치가 말해 준다. 2012년만 해도 우버가 진출한 도시는 세계적으로 12곳에 불과했다. 현재는 44개국, 170곳에 이른다. 기업가치는 180억 달러로 추정되며, 매달 약 5만 명이 우버 운전자로 신규 등록한다.

하지만 이는 곧 우버의 '적들' 또한 크게 늘었음을 뜻한다.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법원은 우버 서비스 중 일반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하는 '우버팝' 및 '우퍼X'에 대해 영업 금지 판결을 내렸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등 유럽 대도시들에서도 기존 택시 운전사들의 반발 시위에 일부 서비스가 불법 판정을 받았다. LA와 샌프란시스코의 검찰 또한 일종의 카풀 서비스인 '우버풀'에 대해 경고 서한을 보냈다.

이 정도면 열기가 한풀 꺾일 법도 한데, 칼라닉에 대한 실리콘밸리 여론은 여전히 뜨겁고 긍정적이다. 남들은 보지 못한 기회를 포착해 강력한 의지와 놀라운 실행력으로 기존 질서를 뒤엎고 새 시장을 창출하는 것. 실리콘밸리가 추앙하는 기업가 정신 혹은 '창조적 파괴'의 가장 극적이자 극단적인 사례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LA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세일즈맨 기질이 다분했다고 한다. 18세 때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수능 대비 족집게 과외'였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UCLA)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몇몇 친구가 파일공유 서비스 회사 '스카워'를 창업하자 여기에 합류해 1998년에는 학교까지 그만뒀다.

스카워는 한때 15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할 만큼 승승장구했지만 강력한 경쟁자 '냅스터'가 나타나고, 몇몇 콘텐트 기업이 천문학적 규모의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칼라닉은 2011년 '실패'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 '페일콘(Failcon)'에서 당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 14시간씩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게임을 했다. 이길 때까지, 허세를 부리는 심정으로."

그러나 침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 그는 스카워 창업자 중 한 명인 마이클 토드와 새 사업을 시작한다. '레드 스우시'라는 콘텐트 전송 최적화 회사였다.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창업자들 간에도 갈등이 싹텄다. 둘은 사사건건 서로를 탓하며 으르렁거렸다. 결국 토드가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직원 대부분이 그를 따라나섰다. 칼라닉은 그만큼 인기가 없었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그는 잰 체하며 매사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에고 그 자체'이자 지칠 줄 모르는 수완가라고 한다.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칼라닉은 포기하지 않았다. 3년간 월급 없는 생활을 견뎠다. 비용 절감을 위해 2006년 회사를 태국으로 옮기는 모험까지 감행한 끝에 2007년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네트워크 컴퓨팅 기업인 아카마이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것이다. 회사가 2300만 달러에 팔리면서 칼라닉은 백만장자가 됐다. 그의 캐릭터에 진저리를 치며 떠났던 옛 동료들까지 수혜를 입었다. 칼라닉의 집요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후 투자자로서 실리콘밸리의 젊은 야심가들과 어울리던 그는 새 사업 기회를 발견한다. '실시간 모바일 운수 서비스', 바로 우버였다. 사실 우버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스텀블어폰' 공동창업자 개럿 캠프였다. 캠프 역시 2007년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함으로써 거부가 됐다. 2009년 캠프가 회사를 꾸린 직후 칼라닉이 가세했다. 처음 둘은 라이언 그레이브스라는 젊은 개발자를 최고경영자(CEO)로 내세웠다.

하지만 2010년 6월 서비스가 출시되고 사용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게 되자 칼라닉은 돌연 그레이브스에게 CEO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우버는 '창업 초짜'인 그레이브스가 끌고 가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었다. 그레이브스는 이 요청을 두말없이 받아들인다. 덕분에 그는 우버의 총괄매니저 자리는 물론 지분까지 지킬 수 있었다. 칼라닉의 '에고'에 맞서지 않은 덕에 억만장자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많은 이가 우버를 단순한 택시 대체 혹은 차량 공유 서비스로 생각한다. 칼라닉의 야망은 그보다 훨씬 크다. 영역을 막론하고 사람뿐 아니라 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운송 플랫폼'을 지향한다. 실제 우버는 이삿짐 운반부터 생필품 택배, 도시락 배달 서비스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요즘은 이 회사 운송 시스템을 활용한 제3의 스타트업 창업도 활발하다.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전통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온.오프라인 연결점 비즈니스의 대표 기업인 셈이다.

실제 연결점 비즈니스 기업들은 뛰어난 데이터 분석력을 앞세워 운수업뿐 아니라 금융.에너지.교육.농업 등 주류 산업 영역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요컨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셈이다. 기존 업계의 만만찮은 반발과 법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우버 혹은 우버와 유사한 방식의 비즈니스가 시장을 바꾸게 되리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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