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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참새 죽이기와 앵무새 죽이기

김완신/논설실장

가장 부당한 차별은 인종과 성별에 의한 차별이다. 피부색과 남녀 성별은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다. 따라서 태생적으로 부여된 신분에 근거한 차별은 항상 불합리하고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의 악습에 고통받고 있는 한 여성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란의 영화제작자 솔레이마니가 만든 30분 분량의 '참새 죽이기(To Kill a Sparrow)'가 그것으로 주인공은 현재 24세의 소헤일라다. 그녀는 5살 때 중년 남성에게 팔려가, 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는 16세가 되면 아버지와 동갑인 67세 남성의 네번째 아내가 될 운명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헤일라가 태어나기 전 이복오빠가 사촌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져 달아나면서 두 집은 불화가 시작된다. 소녀의 아버지는 사촌집과의 화해를 위해 아프간의 전통인 '바드(Baad)'를 선택한다. 바드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에 남아있는 오랜 관습이다. 이슬람교와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벽지 주민, 특히 파슈툰족 사이에서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부모나 가족의 잘못을 대신해 소녀를 팔고 사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소헤일라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희생했다.

16세 되던 해 결혼 전날 소헤일라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다. 거기서 10세 정도 나이가 많은 사촌 무하마드와 함께 집을 뛰쳐 나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녀 가족은 소헤일라가 이미 67세 남자와 결혼한 것으로 간주해 두 사람을 간통, 혼외임신, 중혼 등의 죄목으로 고발했다. 결국 두 사람은 체포돼 감옥에 수감됐는데 아프간 여성인권 단체 WAW의 도움으로 바드에 의한 강제결혼은 무효라는 판정을 받아 풀려난다.



현재 소헤일라는 자유의 몸이 됐지만 아버지와 이복오빠는 그녀를 신의 이름으로 응징하겠다며 그녀를 살해하는 것은 '참새 죽이기'와 같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아프간에 '참새 죽이기'가 있다면 미국에는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가 있다. 1960년 하퍼 리가 출간한 책으로 남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백인처녀가 집안 일을 도와주던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을 유혹하지만 처녀의 아버지는 오히려 톰에게 성폭행 누명을 씌운다. 양심있는 변호사 애티커스가 부당한 차별에 맞서 흑인 청년의 무죄를 증명했으나 백인 중심의 배심원들은 유죄판결을 내린다. 결국 톰은 탈주를 시도하게 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프간은 세계에서 여성인권이 가장 열악한 곳이다. 1992년 이슬람 과격단체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기본적인 여성인권은 철저하게 박탈됐다.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남자 허락없이는 외출도 금지된다. 2001년 탈레반 축출 후 여성인권 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됐지만 여전히 저주받은 '성(性)'으로 남아있다. 현재 아프간 교도소 수감 여성의 80%는 여성을 학대하는 부당한 법의 희생자들이다. 매춘을 강요하는 남편과 잔혹한 가정폭력에 맞선 것도 범죄가 된다.

하퍼 리의 작품에서 '앵무새'는 흑인 청년 톰 로빈슨으로 상징되는 유색인종이다. 흑인 청년을 변호한 애티커스는 맑은 노래를 부르는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앵무새는 인종 차별로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미국은 1960년대 민권법 통과로 외형상의 인종차별은 사라졌지만 내면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깊게 자리한다. 얼마 전 백인 경관이 흑인 청년을 살해함으로써 촉발된 퍼거슨 사태에서 보듯 인종문제는 언제든 미국의 옭아매는 원죄가 되고 있다.

참새와 앵무새는 무력한 존재다. 지금도 관습의 굴레로 핍박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로 멸시하는 '참새와 앵무새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다. 참새가 죽어가고 앵무새가 노래하지 않는 사회는 정의를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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