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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약으로 약 올리는 세상

이종호/논설위원

100세 시대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이다. 그만큼 건강정보도 넘쳐난다. 덩달아 전에 못 보던 건강보조식품도 쏟아진다. 요즘 한인사회 광고를 봐도 그런 '약 광고'가 태반이다.

얼마 전 아는 분이 요즘 광고에 많이 나오는 공진단(供辰丹)을 선물로 받았다며 몇 알 나눠주었다. 중국 황제들만 먹었다는 불로장생보약이라면서다. 원기회복, 스트레스 해소, 노화 방지 및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탁월하단다. 이쯤 되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무슨 새로운 약만 나오면 으레 하는 소리여서 이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가격이 한 알에 50~100불은 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떤 약이기에 그렇게 비싼가?

인터넷을 찾아봤다. 처음 만든 이는 14세기 중국 원(元)나라 위역림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이란 의서에서 남자가 장년에 이르러 진기가 몹시 약해질 때 쓰는 약이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원래 공진단은 허약한 장년 남성들에게 처방하는 약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은 물론 수험생들까지 애용하는 고가의 보약이 되었단다. 드라마 등 TV에도 자주 등장하고, 워낙 값이 비싸다 보니 청탁과 뇌물에 단골로 이용된다는 기사도 있었다.

들어가는 약재는 녹용, 당귀, 산수유, 사향 4가지다. 이중 가장 귀한 것이 사향이다. 사향은 번식기 수컷 사향노루 생식기에 딸린 향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으로 워낙 그 양이 적은데다 최근 사향노루가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되면서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니 값도 천정부지일 수밖에. 그래서 요즘은 사향대신 비슷한 성분의 다른 재료를 쓰기도 한단다.(이게 공진단 대중화의 비밀이다)



문제는 이런 고가의 약일수록 약재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사이비'가 많다는 것. 한국에서의, 그것도 몇 년 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미 KBS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도 그 실태를 보도했었다. 대학병원이나 유명 한의원에서조차 재료를 속이거나 무게를 조작해 폭리를 취한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일이 어느 특정 제품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요즘 시판되고 있는 온갖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값도 값이려니와 광고만 봐서는 죽은 사람도 살려낼 것 같은 '기적의 약'도 많다. 거기다 그토록 신통한 물건이 여태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나 싶기도 하다. 더 궁금한 것은 누가 어떻게 그런 효과를 검증했을까 하는 것이고, 또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제품이 있었느냐는 듯 흔적도 없이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정체불명의 '약'은 나오고, 또 팔려 나간다. 이유가 뭘까. 아마 몸보다 정신이 먼저 병든 현대인의 심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쉴 새 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질병,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과잉정보, 그럼에도 오히려 높아만 가는 공포심, 그리고 모두가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가는 현실. 이런 세태를 영악한 상술이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는 것이다.

답은 소비자가 좀 더 똑똑해지는 것밖에 없다. 내 몸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다. 약보다 음식, 약보다 운동, 약보다 마음 다스리기라는 평범한 건강수칙을 실천하는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原)이라고 우리 전통의학도 음식과 약이 다르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싸고 희귀한 약들이 우리 몸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런 약을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고 무병장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자도, 권력자도 똑같이 병에 걸린다. 오히려 더 일찍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많다. 진시황이, 네로 황제가, 아니 그 많은 갑부들이 돈이 없어, 약이 없어 죽었겠는가.

비싼 약이 좋은 약이 아니라 내 몸에 맞으면 그게 보약이다.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 이 진부한 문구 속에 100세 시대의 또 다른 장수 비결이 담겨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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