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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젊은 천사들에게 축복을 - 영 그레이

남편을 여윈 안사돈은 아들을 결혼시킨 후 노후를 준비했다. 틈나는대로 집을 이곳 저곳 고친다며 6년 전 크리스마스 때 사돈네에 들린 우리 가족에게 그녀가 개조한 머드룸을 보여주었다. 한쪽 벽에 멋진 나무로 바닥에서 천정까지 캐비넷을 짜 넣었고 바닥을 단단한 나무로 바꾼 차고에 딸린 작은 방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집안으로 들어오기에 편리하도록 변경시켰다. 사돈네는 특히 겨울이 길고 추운 미네소타주에 있다.

훗날 그녀의 아들과 나의 딸이 출세하여 돈을 많이 벌면 우리 둘은 여행다니자고 내가 제안했다. 모든 경비를 딸과 아들이 물도록 하자고 했더니 그녀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저택을 사면 우리는 그 집 뒷뜰에 작은 움막을 짓고 손자 손녀와 놀면서 재미난 노후를 보내자는 그녀의 발상에 나도 박수쳤다. 우리는 장남과 장녀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비슷한 나이의 엄마들이었다. 백인과 동양인, 그리고 북부와 남부의 차이는 아예 없었다.

4년 전, 오랫동안 근무하던 병원에서 드디어 안사돈은 정년퇴직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 하겠다며 알찬 계획을 세운 그녀가 무너졌다.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였다. 유방암 발견이 시작이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치고 간신히 몸을 추스리던 그녀는 넘어져서 엉덩이뼈를 다쳤다. 다시 히프 대체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던 과정에서 뇌의 종양들이 발견되었다. 종양을 제거하는 뇌수술을 받고나서는 몸의 기능을 잃었다. 언어와 움직임이 제한되자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탓다. 건강이 악화되니 그녀의 소망은 축소되었다. 죽기 전에 두 딸이 결혼하는 것과 손자, 손녀를 보고 싶어했다.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 각각 다른 주에 사는 아들 딸 3 남매가 돌아가며 그녀를 돌보는 힘겨운 상황이 이어졌다. 나의 딸이 시어머니를 모시던 3개월, 나는 안사돈에게 매일 시시콜콜한 수다 편지를 보냈고 딸은 읽어주었다. 잠시라도 그녀에게 일상의 평온을 주고 싶었다. 병원과 재활원, 요양원을 들락이던 그녀는 2년 전 아이오와주에 사는 딸 가까이 사설요양소로 옮겼다. 그해 12월 자식들이 원근의 친인척을 초청해서 어머니를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크게 열었다. 우리도 갔다. 미네소타에 있는 자신의 집에 온 그녀는 2층 침실을 가보지 못하고 1층 응접실에 멈췄다. 쇠약한 그녀가 농담을 나누거나 웃지를 못해서 모두 안타깝게 그녀 주변을 서성였다.



안사돈은 수다쟁이인 나와 달랐다. 언어 선택에 신중했고 말을 아꼈다. 이제는 정물처럼 휠체어에 앉아 지켜만 본다. 결혼식 전날, 남자들은 몰려서 다운타운으로 갔고 여자들은 친척집에 모여서 과자를 구우며 결혼식 전야를 즐겼다. 그녀에게 음식을 떠먹이고 입가를 닦아준 나의 딸이 부엌으로 갔다. 시어머니의 휠체어를 잡고 며칠 밤낮으로 시어머니를 돌보던 나의 딸이 솔직히 자랑스러웠다. 따스함을 찾아 벽난로 가까이 앉았더니 안사돈이 “사랑이 많고 어른을 존중하는 딸을 키웠다” 라 말했다. 그것은 그녀가 표현한 최대의 칭찬이었다. 콧마루가 시큰했고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결혼하며 연결시킨 우리 인연은 끈끈했다.

안사돈은 24시간 누군가의 돌보임을 받아야 한다. 그녀의 상황이 악화되자 올 여름 아이오와주에 사는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마음이 고운 그녀가 바로 결혼하는 신부였다. 어머니를 돌보면서 결혼 준비를 했다. 더욱 그녀의 약혼자인 신랑도 신부의 뜻을 높이 받아 동의했다. 착한 젊은이들은 신혼여행을 훗날로 미루고 신혼 살림을 중환자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의 갸륵한 마음이 원근에서 찾아온 친인척을 감동시켰다. 플로리다에 사는 사돈네 딸은 작년에 뉴욕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올 가을 예쁜 딸을 낳았다. 드디어 자신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자 앙상하게 마른 안사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안사돈의 손을 잡고 감사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자신을 돌보아 준것처럼 이번에는 자기가 어머니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옆에서 모녀의 애잔한 사랑 나눔을 보다가 눈물이 나서 결혼식장인 정원으로 갔다. 낙엽이 깊은 고옥의 정원은 햇살아래 황금빛으로 화사했다. 안사돈의 여생이 가을햇살처럼 부드럽기를, 그리고 천사들인 신혼부부의 장래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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