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오픈 업]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예전에는 제가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내 동생도 LA에 살고 있다'거나 '내년에는 나도 미국여행을 떠날거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화제가 바뀌었어요. 이제는 '오랫동안 살았던 미국을 떠나 고향에 오니까 마음이 편하다'거나 '과거에 미국에서 살았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등으로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국은 한국이 아니다. 글렌데일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동네신문에 실린 어느 여기자의 글이다. 그녀는 아르메니안이다. 앞으로 몇십년 후 또는 몇년 후에는 한인이민 1세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의 경우에도 고국에 가면 이런 따스함이 느껴질까? 사실 그들의 고향은 이곳 미국이다. 그러기에 여기자의 맺음말은 인상적이다. "언젠가 돌아갈 수 있는 고국에 대한 정이 없는 2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정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된다는 말이다.

아르메니안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환자들을 통해 나는 이들 문화가 한국인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인들처럼 동족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아르메니안 부모들은 2세 자녀들이 연애나 결혼을 할 경우 동족과 해야 된다고 말한다.

31세된 아르메니안 환자는 최고 학부를 졸업한 간호사다. 그녀는 이미 미국인 남성과 깊이 사귀고 있지만 부모가 알까봐 몹시 걱정하고 있다. 또다른 아르메니안 노총각 환자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아르메니안 젊은 여자들은 눈이 아주 높아요. 벤츠나 BMW 같은 고급차를 못타는 저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지요. 그런 여자를 만족시켜 주려면 저같은 사람으로는 어림도 없는데, 부모님은 자꾸 아르메니안 신부만 원하니 답답해요."



그러던 어느날, 청년에게 어머니와 큰형이 함께 왔다. 나의 환자인 막내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믿음직한 맏아들을 동반해 온 것이다. 미국인 가정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아무리 철이 늦게 들은 아들이라 해도 29세 성인 아들을 못믿어, 엄마가 집안의 어른격인 큰아들까지 보호자로 데리고 온 것이다.

막내 아들은 직장을 가진 성인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근본 문제는 자신감 결여다. 사랑이라는 '폭력'으로 어머니는 점점 아들을 열등감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간이라도 아들의 자아 존중감을 살려주셔야 합니다. 24시간 아들을 걱정하는 대신, 웃는 얼굴로 잘 될거라 믿어주시면 막내 아들은 성공할 겁니다. 형제들마저 막내를 한심하게 보고 존중해 주지 않으면 아들은 점점 더 자신을 잃겠지요."

다정도 병이라는 말이 있다. 각 개인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경계선이 있다. 부모와 자식의 정이 아무리 깊고 강하다 해도 개인의 경계선까지 비집고 들어가서 자식을 열등감에 빠뜨려 놓아서는 안 된다. 아르메니안 엄마가 배운 사랑의 방식이라 해도, 자식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는 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아르메니안 엄마들은 정 깊은 한국 엄마들을 많이 닮은 것 같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