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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애플 로고와 동성애

김완신/논설실장

애플의 로고인 '사과'의 유래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경의 선악과처럼 인류의 문명을 바꿀 사과를 뜻하기도 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를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가 로고를 결정 못해 고민하다가 사과농장에서 휴식 중 우연히 떠올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애플 로고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제기됐지만 사과를 택하게 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중의 하나가 수학자 앨런 튜링의 '사과'다. 튜링은 1912년 영국에서 출생한 수학자이며 컴퓨터 과학자다. 초창기 컴퓨터 개발에 학문적인 기초를 세워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1952년 동성애 혐의로 기소된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중범죄로 다뤄졌다. 튜링은 실형과 화학적 거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실의에 빠져 생활하던 그는 1954년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조사에서 튜링이 자살을 했는지, 사고사였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과에서 청산가리 성분이 발견됐다는 것도 입증되지 못했다. 그러나 튜링이 컴퓨터 분야의 선구자였고 사체 옆에 먹던 사과가 남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애플의 사과 로고는 튜링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추론은 독이 묻은 사과가 나오는 '백설공주' 동화를 튜링이 좋아했다는 사실과 이어져 증폭됐다.

지난 주말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기고나 활동 등을 통해 동성애자로 알려져 왔지만 정식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제까지 연예계, 미디어, 스포츠 분야에서 유명인사들의 커밍아웃은 많았지만 재계 최고의 인물이 동성애자라고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쿡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나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이는 신이 내게 준 선물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의 커밍아웃이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첨단과학과 IT문화의 아이콘인 애플의 CEO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이번 커밍아웃은 영향력과 상징성이 크다. 동성애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성숙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성적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에게는 고무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32개 주와 워싱턴DC, 몇몇 아메리칸 원주민 지역이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방대법원이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결혼 혜택을 '남녀 부부'에게만 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연방법원이 동성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동성결혼의 허용을 시사한 것이다. 가주에서는 2010년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민발의안8을 연방법원이 기각해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동성간 결혼의 길을 열었다.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은 그가 사망한 지 13년이 지난 1967년 폐지됐다. 2009년에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42세 나이에 숨진 튜링에게 정부를 대신해 공식사과했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튜링에 대한 사후(死後) 사면을 결정해, 동성애가 범죄가 아님을 선포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중형의 범죄로 낙인 찍혔던 동성애를 이제는 공공연하게 발표하는 시대가 됐다. 애플의 로고가 된 사과를 먹고 동성애자 튜링은 '자살'을 했는데, 애플의 동성애자 CEO는 이를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밝힌다. 애플이 만들어가는 문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보는 관점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또다른 반세기가 지나면 세상은, 그리고 남과 여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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