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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바느질 아줌마들의 '행복한 수다'

정설아/퀼트가든LA 운영자

지난 주에는 호박을 만들었다. 멋진 가을 느낌의 천으로 만든 호박도 분위기 있었지만 버리는 블라우스 뒤판을 오려낸 호박도 아주 괜찮았다. 오래된 천 박스에서 골라낸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든 가을 리스에는 도토리 장식을 감아 주었더니 꽤 훌륭한 모양을 갖추었다. 멋진 데코레이션이 되었다며 이번 생스기빙데이에는 우리집에서 모임을 하면서 자랑 좀 해야겠다는 말씀이 오간다.

이제 5년 째가 되어가는 이 바느질 모임은 늘 별 일이 있는 특별한 모임이다. 영자님, 비비안나님, 매건님, 미연님.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름을 부른다. 어색하셔도 할 수 없다. 처음 오면 자기 소개를 해야 하고 기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느질 솜씨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솜씨라는 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서 잘 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원칙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작품은 반드시 만드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고 그이의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아마 모두 아실 것이다.

자투리 천들이 모여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이 어느 구석에선가 빛을 발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소중함 때문에 몇 푼이면 살 수 있는 가방이나 지갑을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다. 급변하는 시대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지만 바늘을 잡으면 우리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지되고 평안한 시간의 차원이 있다. 그래서 집안일이 가득 쌓여도 한 번 잡은 바늘을 놓기가 힘들고 그래서 늘 새로운 작품이 꼬리를 물고 시작된다.

모임에는 늘 풍성한 것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수다'. 제일 많이 회자되는 소재는 건망증이다. 그 다음은 '늙어감'이다. 이상하게 더위를 탄다는 소리에 모두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내며 그이에게 선풍기 바람이 잘 가는 자리를 권하고, 요즘은 이상하게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이에게는 이런 저런 조언이 오간다. 실수가 잦아진 셀폰 터치에 대해, '늙어서 그래'라는 얼토당토 않은 결론이 나는 것에도 반대가 없다.



어르신들의 부고 소식도 심심치 않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그 동안 병수발로 고생하셨던 회원분 모습이 생각나 함께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랫동안 불임으로 마음 한켠이 무거웠던 분의 불러오는 배를 보며 함께 웃고, 오랜만에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신 분을 안아 드리기도 한다. 투철한 연구정신으로 늘 새로운 패턴을 공유해 주신 분께는 박수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분은 손을 잡아 드리며 때로는 좋은 먹거리도 함께 구매한다. 풍성함의 진수는 점심을 나누는 식탁이다. 바느질 모임의 자랑거리가 밥상이라니. 그렇지만 밥 반찬을 나누는 이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또 있을까.

올해가 두 달 남았다. 이상하게 빨리 가버린 시간들이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늘어가는 건망증, 늘어가는 뱃살, 늘어가는 주름, 늘어가는 잔병치레' 라는 말에 '좋아요' 꾹 눌러 주시는 동지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싶다. 다음주부터는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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