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우주는 한 송이 꽃

무심히 툭 떨어지는 허무, 그 허허한 한 잎 낙엽마저도 시인에게는 우주였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시인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 전문)

어찌 낙엽뿐이랴. 만유는 나름대로 마땅한 뜻이 있어 거기에 그렇게 있고, 서로 무관하지 않아 하나마다 소중한 가치이다.

중국 전국시대 역설의 대가 혜시는 무릇 지극히 큰 것은 크고 커서 밖이 없다. 지극히 작은 것은 작고 작아서 중간이 없기에 안이 없다. 안팎이 없으니 지극히 큰 것과 작은 것은 하나라고 설파했다.



현대물리학도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인 우주까지, 만유는 각자 이름과 모양은 달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며, 서로 의지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화와 원융을 이루고 있는 유기적 단일체임을 밝혔다. 미립자의 세계에서 광활한 우주의 탄생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극히 작은 점(특이점)과 같은 구조에 우주의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 물리법칙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해낸 것이다. 결국, 거시세계의 본질은 미시세계이며, 미시세계는 그 안이 없어 텅 비었다.

불교는 그 본질인 ‘텅 빔’을 공(空)이라 한다. 모든 존재나 현상은 인연 조건들의 연기적 관계로 생기한 것이기에, 거기에는 불변의 실체인 자성이 없어 공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공은 텅 빈 허무적 결핍이 아니다. 자성이 비었기에 조건만 맞으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태이다. 따라서 존재론적 의미의 공은 비었으되 에너지적 생명의 원천으로, 우주 만유는 그러한 에너지의 역동적 상호관계에서 생성된 산물이다.

아무튼,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827년 몰) 역시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거든/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아라”고 노래했다. 그의 심오한 사유의 일단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일찍이 신라의 의상대사는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우주 법계를 장엄한 화엄경의 거대한 담론을, 고도의 밀도로 압축(210자)하여 ‘법성게’라는 선연한 시에 그 정수를 담았다. 시공을 넘나든 통연함, 진리에 대한 우주적 통찰과 우주 그 너머까지 들여다본 심안은 가히,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니/ 한 티끌은 온 우주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었다/ 영원한 시간이 한 생각 일념이고/ 찰나의 한 생각이 영원한 시간이어서”.

실로 우주는 한편의 웅혼한 대서사시이며 장엄한 교향악이고 궁극의 노래로, 끝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었다.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musagusa@naver.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