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기자의 눈] 나이·경력 들먹이는 비겁자들

오세진/사회부 기자

태평양 상공에서 싸움이 났다. 지난달 LA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다. 상황은 이렇다. 한 한인 중년 남성은 나란히 앉은 20대 청년과 여행하는 동안 대화를 하고 싶어 자꾸 말을 걸었다. 하지만 청년은 "감기가 심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정중히 몇 번이나 거절했다.

문제는 기내 음식 서비스가 나왔을 때 터졌다. 청년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 하고 잠을 자려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안 먹으면 손해"라며 구구절절 그 이유를 설명했다. 참다 못한 청년은 "아저씨, 제가 좀 아파요. 제발 그냥 가시죠"라고 짜증을 냈다. 그러자 남성은 "당신 몇 살이야. 어린 놈이 싸가지 없게"라며 큰 소리를 냈다. 이 한 마디가 끝내 싸움에 불을 붙였다. 싸움은 승무원들이 나서 청년의 자리를 옮기면서 마무리됐다. 많은 이가 갈등을 일으킨 중년 남성을 탓했다.

나이를 앞세워 우위를 점해 보겠다는 남성의 이런 발언을 논리학에서는 '주의전환의 오류(Red Herring Fallacy)'라고 한다. 본질이 아닌, 본인에게 유리한 얘기로 화제를 돌려 상대 논리를 무너뜨리는 심리가 작용한다.



'낮은 수'를 언급하며 상대를 제압하려는 태도는 또 있다. 지난 12일 LA 한인타운의 한 은행에서는 한 여성이 대기 시간이 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여성은 어려뵈는 한 직원이 상황 설명을 하려하자 "당신 여기서 일 한지 몇 년이나 됐어. 은행장 나오라 그래"라며 직원의 짧은 경력을 공략했다. 여성의 심리에는 '저 직원은 직책 높은 사람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 내 일을 먼저 봐 주겠지'란 나름의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높은 사람에게 당신 잘못했다 이르겠단 협박이었다.

어리고 경력이 짧으면 상대적으로 능력이 미숙할 수 있다. 하지만 판단의 절대적 기준일 수는 없다. LA 한인사회의 기업 내에서도 목격됐다. 한 회사에서 2년차 직원이 회의 시간에 잡일만 시키는 팀장에 제대로 된 업무를 맡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팀장은 "막내는 아직 능력이 없다"고 했고, 당사자는 "시켜보지도 않고 판단하냐"고 항의했다. 이 직원은 팀장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다가 징계를 받아야했다.

기자도 비슷한 불쾌한 경험이 있다. 최근 LA시 요직 선거에 후보로 등록한 한인 후보 A씨는 지난 5월 자신이 관련된 단체의 행사와 관련해 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내용은 행사정보 전달 위주였고 타 기사에 비해 비중이 낮아 신문엔 작게 처리가 됐다. 다음날 A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가 너무 작아요. 다시 해 줘요. 혹시 기자 몇 년 했어요? 편집국장에게 말할테니 연락처 줘 보세요. 당신 사장하고도 친해요."

'당신이 마음에 안드니 권력을 쓰겠다'였다.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의 위험한 태도다. 투표일이 다가오면 태도를 바꿔 자신의 기사를 써달라 할지 모르겠다. 그 기사에 '사회 초년생들의 목소리,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후보'란 흔한 홍보용 표현이 나온다면 이는 오보다. 어린 나이와 낮은 연차수에 연연하는 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겁한 태도이자 큰 착각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