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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2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다

정 구 현/경제부 차장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의사의 선고는 메스보다 날카롭다. 단순해서 더 절망적이다.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면 한 9개월 정도밖에…." 의사는 희망의 유효기간마저 도려냈다.

동영상은 시한부 판정 장면부터 시작한다. 건강검진을 받았던 30대에서 50대까지 남녀 여러 명에게 '남은 시간'들이 선고된다. 짧으면 7개월, 길어야 4년 사이였다.



예상하지 못한 진단에 감정은 뒤섞인다. 짧고 깊은 한숨, 울음을 삼킨 눈물, 대상을 잃은 원망….

의사는 진단서를 조용히 내밀고는 진료실 밖으로 나간다. 검진자들은 못 믿겠다는 듯 서둘러 진단서를 펼쳐든다. 첫 장에 쓰인 문구는 이렇다.

'많이 놀라셨죠?'

'이건 또 뭔가' 검진자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진단서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바뀐다. 안도했다가, 심각해졌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복잡한 표정들을 담은 영상의 사연은 이렇다. 영상은 삼성생명이 제작했다. 5분 12초 분량에 제목은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다.

검진자들은 불치병 환자가 아니다. 삼성생명은 영상 제작 일주일 전 검진자들에게 매일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들은 '당신은 보통 몇 시에 자는가', '퇴근은 빠른가', '사람들과 술자리는 얼마나 자주하나' 등이다.

이들이 받아든 진단서는 그 결과다. 내게 남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다. 영상은 인기다. 공개 1주일 만에 조회 수는 400만을 넘었다. 반전 때문이다. 검진자들은 시한부가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할 남은 시간은 불치병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남은 시간의 계산법은 복잡하지 않다. 현재 남은 평균 수명에서 빼야할 시간만 제하면 된다.

예컨대 박명순(53)씨의 가족 시간 계산법은 이렇다.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박씨에게 남은 삶은 32년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시간 10년, 자는 시간 9년 11개월, TV 및 스마트폰 보는 시간 4년 2개월 등 써야할 시간을 뺀다. 밀려진 시간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다.

박씨의 경우 9개월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스마트폰 보는 시간의 1/5도 안됐다.

검진자들은 남은 시간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미국에 가족을 보낸 이건창(56)씨는 탄식부터 했다. "이렇게 가족도 못 챙기면서 살아왔나 하는 후회가…."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야 할 말들도 많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어머니에게 못해봤던 말…사랑합니다." 홀어머니를 둔 30대 남성의 고백이다.

실제 통계가 궁금했다. 한국의 18세 이상 남녀는 연평균 가족과 함께 286시간을 보냈다(통계청 조사). 1년에 12일 정도다. 앞으로 40년을 산다면 1년 4개월 정도다.

미국도 찾아봤다. 연방노동부 자료가 있었다. 매주 평균 10시간이었다. 한국보다 2배 많은 셈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민 온 한인들이라면 객관적 환경만큼은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40년 남은 인생에서 1년 4개월이나, 2년 8개월이나 여전히 '시한부' 삶이긴 마찬가지다.

광고 영상의 마지막 부분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던 변명들로 채워진다. '여보 나 오늘도 늦어','엄마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못가요', '안돼 나 주말에 골프 약속있어.'

영상 덕분에 제주도에 사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얼마 전 출장가서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다.

소담스럽게 차리신 '집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평소 전화통화 때마다 하시던 말씀을 또 꺼내셨다. "식구가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먼데 보냈는지…."

곧 연말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예산보다 가족끼리 어떻게 시간 보낼지 시간표부터 짜보는 게 어떨까 싶다.

내 가족시간을 계산했다. 나도 23개월 시한부였다. 정말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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