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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김자옥의 빈 자리

이종호/논설위원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좀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다. 장례식장 풍경은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르다. 장수의 복을 누리고 가족의 애도 속에 돌아가신 분의 장례는 슬프지만 아름답다. 뜻하지 않은 병이나 사고로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분들의 장례식 자리는 숙연하고 안타깝다. 채 피지도 못한 나이에 요절한 젊은이의 장례식은 비통하고 눈물겹다. 그러나 어떤 장례식을 가든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몇 가지 생각이 있다.

우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네 일상에서 장례식은 강력한 스톱사인이자 브레이크라는 것이다. 저렇게 훅 가고 나면 그만인 것을, 어쩌자고 우리는 여전히 뛰어 가고만 있는가. 안 되지. 그렇게 한번 쯤 멈춰 서서 전후좌우를 살피게 만드는 게 장례식이다. 과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모든 장례식은 그렇게 한순간이나마 우리를 철학자가 되게 한다.

장례식은 또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선 예외가 없고 순서도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아무리 떵떵거리는 사람도 죽음 앞엔 속수무책이라는 데 좌절한다. 하지만 왕자도 거지도, 재벌도 일용직 노동자도 죽음 앞에선 모두 똑같이 평등하다는 것에 위안도 받는다. 돈과 명예 혹은 권력을 좇아 아등바등 살아본들 결국은 거기서 거기. 그래서 배우는 것이 겸손이다.

마지막으로 장례식은 죽음을 통해 삶을 가르치는 역설의 자리다. 웰다잉(well-dying)은 곧 웰빙(well-being)이다. 잘 죽는 것도 결국 얼마나 잘 살았는가에 달렸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은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세 마디라고 한다. 이 말은 사는 동안 '좀 더 베풀라, 누구에게든 상처 주지 말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아끼고 챙기라'는 깨우침이다. 이야말로 장례식 교훈의 완결판이다.



엊그제 별안간 탤런트 김자옥씨가 떠났다. 사인은 폐암 합병증. 1951년생. 만 63세, 여러모로 아쉬운 나이다. 가수 신해철씨가 요절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때여서 더 황망하고 허망하다.

그는 너무 신비롭지도 않게, 너무 요란하지도 않게 우리 곁에 있었던 친근한 배우였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과 자식이 있는데 축 처져 있어서야 되겠나. 슬프거나 고단할수록 내가 까불어서 남을 웃기며, 그것으로 나 자신을 추스른다." 그는 늘 그렇게 자신을 낮춰 우리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었다.

그만이 아니다. 가수 배호, 김정호, 김현식, 김광석, 탤런트 이은주, 최진실 등 요절한 많은 유명인들이 다 그랬다. 이들의 죽음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방송이나 영화로, 혹은 책으로 음반으로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가족해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은 이미 가족 이상으로 우리 삶에 들어와 있었다. 어떤 가까운 가족이 그들만큼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유명인이라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뻔뻔한 정치인, 악덕 기업인, 이기적인 전문인, 개념상실 연예인 등 스트레스를 주는 유명인도 많다. 그런 점에서 늘 긍정의 마음으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려 왔던 배우 김자옥이 더 고맙고, 그와의 영이별은 그래서 더 애석하다.

고인은 영원한 생명을 믿는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 인간적인 아픔은 있었을지언정 이 땅을 떠나는 것이 고통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데뷔 때부터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이 고왔던 고인을 다시 한 번 추모하며 '배우 김자옥'을 기억하는 모든 팬들에게 큰 위로가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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