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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고전음악]그레고리오 성가

그리스에서 사상적 체계를 갖춘 음악은 이태리로 건너와 중세 (450-1450)를 보내며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당시에는 예술을 이교도적인 전통으로 보아 이단시했기 때문에 감각적 자극의 그림이나 조각보다는 비례의 조화를 갖춘 교회건축물을 중시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가사를 담을 수 없는 기악은 배제되고 오로지 인간의 목소리로 불리는 성가만이 권장되었다 (교회가 기악을 허용한 것은 16세기이후이다).

 당시 불렸던 음악을 흔히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라고 한다. 이는 그레고리오 1세가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황으로 있으면서 성가의 성립에 많은 관여를 한 것인데, 이는 마치 세종대왕이 한글의 창제를 위해 여러 학자들을 시켜 연구한 것처럼, 그도 여러 학자들을 시켜 로마지방은 물론이고 밀라노 (암브로시오 성가), 스페인 (모자라베 성가), 프랑스 (갈리아 성가) 지방의 음악까지 수집/정리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요즘처럼 장단조로 되어 있지 않고 대신 선법 (Mode)이라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처음 시작하는 음 혹은 끝나는 음 (finalis)과 음악이 전개되는 음역을 고려하여 8개의 선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또한 주로 많이 머무는 중심음 (dominant 혹은 tenor)이란 것이 있어 이 음에서 유대교 전통의 시편을 낭송하게 된다.

 이러한 성가는 성 베네딕토 (St. Benedictus, c480-c546)가 설립한 수도원을 통해 애창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하루에 7번이나 되는 기도문 (성무일과)을 말로 되뇌는 것보다 음악에 실어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가보면 예전만큼 하루 7번의 예절을 모두 수행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바치는 저녁기도 (Vesperae)만큼은 화려한 음악과 어우러진다.

 혹자는 그레고리오 성가나 그외의 중세 성가들을 통틀어 평이한성가 (plainchant)라 부른다. 이는 화음도 없고 악기반주도 없이 한무리의 남성들이 부르기 때문에 무미 건조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성가가 가진 깊이의 세계를 몰라서 붙인 용어라 할 수 있다. 실제 라틴어 기도문에 있는 억양의 고저에따라 음악의 고저가 붙여지고 거기에 어절단위로 독특하게 붙여지는 무궁무진한 네우마의 조합을 고려해본다면 이 음악이야말로 그 어떤 음악보다도 복잡 미묘한 가창력을 요구하는 장르가 될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처음으로 나왔을때는 악보가 없었다. 그저 머리속에 암기해야 했다. 그러나 기억의 한계를 절감한 사람들은 9세기에 악보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표기는 지그재그로 되어 상대적인 높낮이만 표시되어 이미 알고 있는 음악의 기억을 더듬는 정도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러다가 10세기에들어 오늘날과 비슷한 4줄짜리 악보가 등장한다. 이 4선보의 정착에는 아렛조지방 출신의 귀도 (Guido d'Arezzo, c1000-c1050)가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또한 손가락을 이용한 계명창법을 개발하여 성가를 초견으로 쉽게 부르도록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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