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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리지 않고 깨끗하게 죽음 맞았으면…"

급발진 사고로 목뼈 골절 장애 이재식씨
신장 투석·습관처럼 약 먹는게 하루 일과

LA다운타운 올리브 스트리트의 한 노인아파트.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이재식(64)씨가 아침식사로 준비한 삶은 달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떨어진 달걀을 줍는 것조차 버거운 그는 10년 전, 급발진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장애를 얻게 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애는 직업을 빼앗고 얼마 없는 대화상대마저 잃게 했다. 그는 교통사고가 나기 전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었다.

이씨의 미국생활은 처음부터 혼자였다. 이혼 후 무작정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왔다. 하지만 여러 번의 사업실패와 사기는 그에게 빚만 안겨줬다. 청소기 외판원·택시기사·페인트공·일용직건설노동자 등 직업을 수도 없이 바꿨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비사의 경험을 살려 '작은 바디샵 하나 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방황 끝에 지난 2003년 얻은 자바시장의 경비직도 1년 만에 사고로 사라졌다. 목뼈 골절로 망가진 사지는 너덜너덜한 종이 떼기에 불과했다.

이씨는 "영주권이라도 있어 나라에서 먹여주니 그나마 산다"면서 근육 없는 팔을 흔들었다. 그가 하루에 복용하는 약은 22개. 일주일에 3일은 새벽 4시부터 신장투석을 해야한다.

1주일 식비는 20달러 정도 사용한다. 장애가 있어 받는 생계보조비(SSI)가 유일한 그의 수입원. 노인아파트 렌트비와 전화·전기료 등을 내면 1달에 600달러 정도 쓴다. 병원에 갈 때마다 확인하는 통장잔액은 밑바닥을 보일 때가 대부분이다. 10년간 모은 동전은 30센티짜리 김치통의 반을 겨우 채웠다.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별개의 문제다. 이씨의 작은 스튜디오엔 1주일에 2번, 홈서비스 간병인이 온다. 그가 그나마 말 붙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얼마 전 간병인에게 '내 썩은 몸뚱이를 보게 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못 먹고, 못 사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날 도와주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이씨의 기도제목은 '치매에 걸리지 않고 깨끗하게 맞는 죽음'이 됐다.

얼마 전 방안에서 뒤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졌었다는 이씨는 물을 사러 밖에 나가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 TV를 본다. 벽에는 15년 만에 만난 딸의 결혼식 사진이 붙어있다. 딸은 "당신에게 신장 이식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다시 연락을 끊었다. 이씨는 "원망하는 사람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게 가장 괴롭다"고 했다.

그가 약통을 차례대로 세웠다. 무슨 약을 먹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이제는 기억하지도 않는다. 이씨는 심각하게 시신기증 방법을 물으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를 측은하게 바라본 이웃 김용신(79)씨는 "이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이 아파트에서 먹을 게 없어 굶는 한인들도 많다"며 "거동이 불편하니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는 분들"이라고 커뮤니티의 관심을 부탁했다.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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