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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62년 전 음성 편지

6·25 참전용사 파병 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자신 부친도 참전했던 한국계 혼혈 수집가가
메릴랜드 중고시장서 구입, LI 주인에 찾아줘






"다음달에 한국으로 파병됩니다. 어차피 갈 바엔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빨리 올 수 있겠죠.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위험하지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마세요."

'지지직…' 잡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목소리 분명 그가 한국으로 파병되기 전 녹음한 음성이었다.



지금은 80대 노인이 돼버린 6.25 참전용사 지노 델시그노리(84.롱아일랜드 뉴하이드파크)는 지난 17일 뜻밖의 소포를 받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파병을 앞두고 캘리포니아주에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부모에게 보내기 위해 녹음했던 음성 편지가 62년 만에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에게 보내진 레코드는 총 4장. 각각 1951년 12월 22일 1952년 2월 19일 3월 9일 3월 21일자로 녹음됐다는 메모가 적혀 있다. 모두 델시그노리가 파병되기 전 녹음해 부모에게 우편으로 보낸 것들이다.

해병대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그는 51년 기초훈련을 마친 뒤 캘리포니아의 해병대 기지 '캠프 펜들턴'에 배치됐다가 52년 4월부터 1년 동안 한국에 파병됐다.

이들 레코드에는 파병 소식 외에도 밸런타인스데이에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며 푸념하는 내용 LA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주말을 보낸다는 등 군 생활의 일상이 담겨 있다.

델시그노리는 "당시엔 편지 대신 이렇게 음성을 녹음해 편지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며 "나 역시 편지를 쓰는게 귀찮아 이 레코드로 편지를 대신해 부모에게 안부를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레코드를 델시그노리에게 보낸 사람은 메릴랜드에 사는 한국계 혼혈 마이클 게이핸(50.사진)이다. 미 육군 출신으로 옛 레코드와 라디오 등을 모으는 수집가인 그는 최근 메릴랜드의 한 중고용품 판매점에서 음성 레코드 몇 장을 샀는데 그 것이 델시그노리의 음성 레코드였다. 수집가인 그에게 이 레코드는 소장 가치가 높은 물건이었지만 게이핸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다. 그가 유독 이 레코드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던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6.25 참전군인이었기 때문이다.

〔〈【→A-2면 '파병편지'로 이어집니다

"나의 아버지도 미 육군 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를 만났고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에 레코드의 목소리가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주인을 찾아 보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게이핸은 8세 때까지 용산에 있는 미8군 부대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하와이로 이주했다. 20대 때 캘리포니아로 옮긴 뒤 군에 입대했고 지난 1998~2002년에는 한국 평택의 미 육군 부대에서 근무했다. 그 곳에서 지금의 부인 이은희씨를 만나 현재 세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해 어깨와 허리 부상을 입고 결국 지난 2012년 17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그럼 어떻게 당시 뉴욕으로 보내졌던 레코드가 메릴랜드의 중고용품 가게에 있게 된 걸까. 델시그노리에 따르면 그의 부모가 별세한 뒤 소지품과 소장 물품 등을 다른 가족이 모두 군인 가족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에 기증했고 이들 레코드도 그때 이 재단에 전달된 뒤 중고품 판매업소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레코디오(Recordio)'라는 이름의 이 레코드판은 1940년대 개발돼 50~60년대 대중적으로 사용됐던 음성 녹음판이다. 이 레코드에 녹음을 할 때는 '레코디오 그램'이라는 기계를 쓰는데 지금의 사진스티커 부스처럼 곳곳에 설치돼 동전을 넣고 사용할 수 있는 간이 음성 녹음기다. 간단한 사용법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등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편지 대신 바로 음성을 녹음해 가족에게 보내는 수단으로 활용됐고 일반 시민들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델시그노리는 "60여 년 전의 추억을 되돌려준 게이핸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그가 보내준 이 레코드들을 소중히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군 전역 뒤 60년대부터 뉴욕시경(NYPD)에 몸담았던 그는 베이사이드 관할 111경찰서에 첫 근무를 시작했고 플러싱 관할 109경찰서에서도 분대장으로 활동했다. 81년 경위로 은퇴해 지금은 부인 아이다와 함께 살고 있다.

"나의 아버지도 미 육군 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를 만났고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에 레코드의 목소리가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주인을 찾아 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게이핸은 8세 때까지 용산에 있는 미8군 부대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하와이로 이주했다. 20대 때 캘리포니아로 옮긴 뒤 군에 입대했고 지난 1998~2002년에는 한국 평택의 미 육군 부대에서 근무했다. 그 곳에서 지금의 부인 이은희씨를 만나 현재 세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헬기 추락 사고를 당해 어깨와 허리 부상을 입고 결국 지난 2012년 17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그럼 어떻게 당시 뉴욕으로 보내졌던 레코드가 메릴랜드의 중고용품 가게에 있게 된 걸까. 델시그노리에 따르면 그의 부모가 별세한 뒤 소지품과 소장 물품 등을 다른 가족이 군인 가족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에 기증했고 이들 레코드도 그때 이 재단에 전달된 뒤 중고품 판매업소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델시그노리는 "60여 년 전의 추억을 되돌려준 게이핸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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