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기자의 눈]무책임한 위로조차 고마운 사람들

구 혜 영/사회부 기자

"전 그 대책 없는 희망, 무책임한 위로 한마디 못 건네는 세상이라는 게 더 무서워요. 대책 없는 그 한 마디라도 절실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인기 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다. 이 대사는 고졸 출신 계약직 부하직원에게 현실상 "괜찮아, 잘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어"란 말을 해줄 수 없는 한 남자의 고백을 듣고난 후, 그의 동료가 해준 말이다. 남자는 부하직원을 아끼는 마음을 담아 (정규직이 되는) 헛된 꿈을 꾸지말라고 해왔다. 그때 부하직원은 '우리'라는 단어를 쓰며 이렇게 말한다. "욕심도 허락받아야 합니까."

누군가의 '괜찮다'란 말에 무작정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직장을 떼어놓고 생각해도 차가운 세상에서 기를 쓰고 버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선뜻 그 말을 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다. '희망 고문' 또는 '자기 위로'라는 틀에 모두를 가두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달 말, LA다운타운 한 노인아파트에서 만난 이재식(64)씨에게 "좋은 일이 꼭 있을 거예요"란 인사말을 전하며 주춤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재의 타이틀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독거노인'이었다. 이씨는 10년 전, 급발진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장애를 얻게 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애는 직업을 빼앗고 얼마 없는 대화 상대마저 잃게 했다. 그는 교통사고가 나기 전부터 매주 3번씩 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장병 환자였다. 이씨의 1주일 식비는 20달러. 생계보조비(SSI)를 받아 렌트비.전화.전기료 등으로 1달에 600달러 정도 쓴다. 통장 잔고는 예나 지금이나 밑바닥을 보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는 가족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했다.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씨는 수차례 '죽음'이란 단어를 꺼냈다. 그는 자신의 썩은 몸뚱이를 발견.처리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매끼 복용하는 22개 알약이 거추장스럽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때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이웃 김용신(79)씨가 몇 마디를 했다. "이 사람아, 다 잘 될 거야. 자네보다 힘든 사람들도 웃고 살아. 죽는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해." 그러자 이씨는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두 사람 모두 그 말을 무조건 믿지는 않을 것이다. 찾아오는 이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하루 종일 TV를 켜놓는다는 독거노인에겐 이루고자 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러나 다 잘될 거라는 한마디가 잠시나마 죽고 싶은 마음과 외로움을 엷게 해준다면 그게 나쁜 일일까. 비록 그 후에 더 큰 절망이 온다고 해도 서로를 생각한 마음은 거짓이 아닐 테니 말이다.

12월도 벌써 첫 주가 지났다. 이 겨울, 마음이 시린 불우이웃들이 주변에 많다. 굳이 돈이 아니어도 좋다. 열심히 버텨보려는 이들에게 대책 없는 희망, 무책임한 위로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다는 건 욕심이 될 수 없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