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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모래알을 경계하자” 김대실 감독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04/07/27 라이프 14면 기사입력 2004/07/26 16:48

4·29 폭동 10년 후, LA의 함성



한인 이민사상 최대의 악몽이었던 LA 폭동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4·29’를 연출했던 김대실 감독(66)이 돌아왔다. 10년 후 LA 사우스 센트럴은 총격 대신 미소가, 긴장 대신 평화가 흐르고 있을까

김감독은 “글쎄,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뉴욕 아시안아메리칸 국제영화제에 초대되어 22일 오후 이메진에이션 시어터에서 상영된 김감독의 다큐멘터리 ‘젖은 모래알: 10년 후 LA에서 들려온 목소리들(Wet Sand:Voices from LA Ten Years Later)’은 바로 김감독의 경종이기도 하다.

“‘4·29’가 폭동 당시 우리가 당한 쓰라림을 미국 주류사회에 알리고 언론에 폭동의 원인이 마치 한흑갈등에 있었던 것처럼 잘못 비춰진데 대한 반론이었다면 ‘젖은 모래알’은 피해자의 10년 뒤 변한 모습을 통해 인종과 사회 시스템 전반을 취급하고 있다.”

김감독은 이재성군의 부모와 한인 사업가들 외에도 흑인·라틴계·백인들까지 50여명을 두루 인터뷰하며 인종과 사회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젖은 모래알’은 사실상 폭동의 원인이 흑백의 갈등에 있었고 근본적인 원인은 빈곤이었으나, 백인이 통제하는 언론은 한인을 끼워넣었고 자신은 분규의 주체에서 실종시켰다고 고발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 소수계는 백인들이 통제하는 정부와 언론의 공동 희생자인 셈이다.

사우스 센트럴의 폭동으로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신기루처럼 보여졌다.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소수민족에게 빈곤은 악순환의 연속이었고, 부를 독점해가는 백인들은 기득권을 지속하기 위해 약자들간의 갈등을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폭동 당시 사망한 이재성군의 모친 이정희씨는 매주 아들의 무덤을 찾는다.

이씨는 “모래알이 젖으면 한손으로 뭉쳐지지만 마르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며 소수민족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쉽게 분열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김감독은 사회정의, 인종문제, 폭력, 빈곤의 해결책이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교육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진정한 희망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의 목적은 미국내 인종차별과 빈곤문제등에 관한 토론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김감독은 교육용으로 ‘젖은 모래알’이 지속적으로 상영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1938년 황해도 신천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양자였던 지주의 딸로 태어난 김감독은 ‘62년 단돈 25달러를 손에 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종교학 교수와 공무원을 거쳐 91년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을 탐험한 ‘아메리카 비카밍’을 연출하며 다큐멘터리 작가의 길로 전환했다. 이후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다룬 ‘잊혀진 사람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침묵의 소리’를 연출했다.

2001년 12월 29일 업 스테이트 뉴욕의 자택이 불에 타면서 김감독은 일생 세번째의 빈털털이가 됐다. 해방되던 해 겨울 온 가족이 집과 재산을 두고 북에서 남으로 이주했으며, 6.25때 서울 용산의 집에 폭격이 떨어지면서 집을 잃었고 시체를 보는 체험도 했다. 이어 뉴욕의 한겨울에 바비큐용 숯으로 인해 집이 전소하는 역경도 겪었다.

현재 김감독은 쿠바에 정착한 한인 3세 마사 김 림교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호랑이 띠 동갑 남편 도날드 깁슨씨와의 공동 회고록 ‘두마리의 호랑이’를 집필 중이다.

박숙희 기자

nysuki@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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