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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인타운의 맨얼굴과 속사정

김지영/사회부 인턴기자

실망이었다. 한인타운의 첫 인상은 문학에서나 접했던 지저분한 70년대였다. 세련되지 못한 간판과 더러운 골목. 여유는 없는데 나태한 사람들이 싫었다. 막연히 상상한 '캘리포니아'의 모습은 노을이 질 무렵 야자수잎 끝자락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타운 내 소식을 매일 접하게 되면서는 더 그랬다. 이 작은 촌락 같은 곳에서 무슨 싸움이 이리도 자주 일어나는지. 체계적인 시스템이나 매뉴얼은 기대조차 안 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LA 생활 초반에 가진 '오만과 편견'이다.

사회부 막내로 일하며 질리도록 한 일은 전화받기다. 사실 수화기 뒤에 숨어 신경을 거스르는 전화가 반 이상이었다. 마트에서 진상을 부리다 쫓겨난 한 고객이 그 마트는 망해야 한다며 소리를 지를 때 '전화 주신 분께서 잘못하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욕 사전을 앞에 펼쳐두고 읽는 듯한 욕설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일도 잊게 하고, 마음 속 단단히 박힌 '오만과 편견'을 흔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름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친하다고 생각한 지인에게 사기당한 한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털어놓을 곳이 없어 이곳에 전화했다, 들어만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 또 하소연이구나' 생각했다. 딱 이정도 생각으로 응대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말했다. "기자님은 저희 같은 사람들이 다 멍청해 보이죠? 하지만 저희도 각자의 사정이 있어요."

각자의 사정. 밖에서 바라보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지난해 학교에서 4명의 동기와 꽤 큰 규모의 동아리의 대표를 맡아 운영했다. 통역봉사 동아리였는데, 학교 이름을 걸고 활동해 빡빡하게 움직이는 단체였다. 대표로 활동한 1년간 가장 큰 변화는 단원으로 지내면서도 몰랐던 부분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소하게는 왜 이렇게 복장 규정이 엄격한지부터, 크게는 왜 이런 커리큘럼을 갖고 활동하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에는 모두 사정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수차례 깨달아놓고는 이곳에 도착해서는 머릿속을 비웠었나보다. 그저 구질구질한 겉모습에 질겁해 고개를 돌렸었다. 물론 이견이 있다 해서 실제로 주먹을 주고받고, 개인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몰상식한 짓이다. 그러나 취재를 하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한인타운은 고국을 떠나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7080 드라마 세트장 같은 모습조차도 나름의 사정에 따라 도출된 결과였다.

겨울이라고 하기 민망한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 많은 글은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으라'고 조언하지만, 현실은 보통 페이스가 주어져 있고 이를 얼마나 잘 맞춰 달리는지에 대한 문제다. 그동안 보아온 한인타운의 흐름은 한국보다 훨씬 느렸다. 흐름의 속도는 시비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 곧 모두에게 2015년이 주어진다. 정해진 페이스에 맞춰 달리되, 타인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이해심과 포용력을 갖자. 1년 동안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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