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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11학년 아이 눈에 비친 한국

이종호/논설위원

추수감사절 무렵 집안 일로 며칠 한국에 다녀왔다. 마침 방학을 맞은 11학년 아들도 함께 갔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은 참 역동적이다. 활기가 넘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또 발전한다. 그러면서도 변해가는 모습에 무엇인가 진한 아쉬움도 느낀다. 아이 눈에 비친 한국은 어땠을까? 좋았던 것과 그렇지 못한 것 3가지씩만 꼽아보라며 방문 소감을 물었다.

아이가 대답했다. 우선 좋은 것 3가지. 첫째 음식이 맛있단다. 그랬겠지. 오랜만에 왔다고 다들 특별한 것만 사 먹였으니. 둘째, 친척들이 많아서 좋았단다. 미국선 달랑 우리 식구끼리만 살다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형, 누나들을 우르르 보고 왔으니 새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셋째, 한국 사람은 모두 잘 생기고 친절해 좋더란다. 하긴 비행기에서부터 예쁜 승무원 누나들의 서빙을 받았고 가게나 식당 등 어딜 가나 세련된 웃음과 상냥한 말투였으니.

아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 주긴 했지만 100% 동의하지는 못했다. 맛있는 음식? 글쎄다. 요즘 한국은 집밥이 거의 없다. 손님이 와도 집에서 식사하는 법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외식이다. 감각적인 맛과 경쟁적인 서비스에 눈과 혀는 즐거울지 몰라도 푸근함과 정겨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배가 고픈, 왠지 허기진 느낌이랄까.

둘째, 일가친척 많다는 것,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은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25%를 넘는다. 점점 더 모래알 사회가 되고 있는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까. 거기다 사람을 만나도 이해타산부터 따지는 만연된 속물주의는 또 어떻고.



세 번째 모두가 잘 생기고 친절하다는 것도 그렇다. 그 이면엔 한국이 세계 제일의 '성형 왕국'이란 것과 '땅콩 회항' 같은 갑의 횡포가 일상화된 사회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이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다음은 아이가 느낀 나빴던 점 3가지. 첫째, 너무 복잡하단다. 당연한 지적이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계 3위다. 그것도 모자라 전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바글바글 몰려 살고 있으니. 둘째, 화장실이다. 고속도로 공공화장실도 불편했고 방문하는 집의 화장실도 그랬다고 한다. 의외였다. 요즘 한국 화장실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있다고 난리들인데. 아마 문화 차이일 것이다. 한국의 가정집 화장실은 미국과 달리 바닥에 물이 있다는 것이 익숙지 않았었나 보다. 공공화장실도 잘 해 놓긴 했지만 너무 이용자가 많으니 그것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세 번째는 냄새다. 거리에선 여전히 담배 연기 내뿜으며 걷는 사람이 많아 싫었다 하고, 식당이나 골목에서도 뭔가 한국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같은 1세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냄새도 1.5세들에겐 낯설고 불쾌할 수 있구나 싶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도 몇몇 그룹의 친구들을 만났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며 먼 곳에서 온 벗을 만나는 기쁨이 어떤 것보다 크다고 공자도 말씀했었다. 굳이 이 말이 아니어도 역시 친구가 고향이고 사람이 고국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하지만 이젠 다시 가서 살라고 하면 도저히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친구들은 여전히 얘기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전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젠 동의하지 않는다. 전 국민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사생결단, 경쟁적으로 달려가야 하는 한국이야말로 재미없는 지옥인 듯해서다.

그에 비하면 조금 모자라고 힘들어도 분수껏 누리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미국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천국이 아닐까 싶다. 편하지만 어딘지 불편해져 버린 한국보다는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젠 한국보다오히려 편한 곳이 된 이 땅, 바로 그 미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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