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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킴 칼럼] 해는 나를 침대에서 본 적이 없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해는 나를 침대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고무된다. 그 한 마디에는 부지런한 일상과 결연한 의지가 전해온다. 그 어떤 형편에서도 그가 계획한대로 인생을 살았을 성실함이 숨어있다. 나에겐 그런 꾸준함이나 지구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무엇을 해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대단한 일이 아닌 아주 작은 일에도 자기와의 약속을 끈기있게 지키는 충성스런 사람들의 결국은 펑범하지 않음을 보아왔기에 그렇다.

“해는 나를 침대에서 본적은 없다”는 말에 걸맞게 규칙적으로 새벽에 일어나는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한다. 자영업 주인이니 출근 시간도 남들보다 여유있지만, 가게문을 여는 오전 8시가 되면 고객의 전화를 받으려 대기 상태가 된다. 설령 아이들이 중요한 숙제를 놓고 갔다고 해도, 고객의 필요와 중복된다면 단연 고객이 먼저다. 이 때문에 ‘아이들보다 일이 더 중요한 매정한 엄마’라는 오해도 받았다. 아무튼 새벽 미명의 옹골진 시간 확보를 위해 애많이 썼다. 올빼미형이라 믿었던 신체 싸이클도 반복되는 극성에 아침형으로 바뀌었다. 잠을 손해보고 찾은 고요한 시간은 나를 나답게 지탱해 주는 비타민 역할을 잘 해 주었다. 보석함에 귀중품을 담듯 내 영혼이 영적, 지적 양식을 공급받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운동도 빼놓지 않고 했다.

요즘 느리게 살겠다는 의도 때문에 슬며시 게으름뱅이 쪽으로 기운다. 오랜 습관에도 불구하고 해에게 침대에 누운 나를 자주 보여 준다. 애틀랜타 기온이 내려가니 이불 속의 포근함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서둘러 출근을 하게된다. 출근하면서 길가에 조깅하는 사람을 만나니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잠자던 목록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그런 이유일까 심장이 쿵쾅 뛴다. 이대로 나이들면 미완성으로 남을 그 목록 하나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해를 침대로 불러 들여선 안 된다. 지금보다 10년이 젊었을 때 작정했던 하프마라톤으로 이제 나를 달금질 해보자. 혼자는 진득하게 해낼 것 같지 않아 꾸준한 남편을 가담시켰다. 이제 내게도 달성해야 할 목적이 생겼으니 그 근면과 성실로 날마다 뛰어야 할 때가 왔다.

왜 ‘버킷리스트’에 하프 마라톤을 뛰겠다는 만용을 부렸는지 뛰어보니 알겠다.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다. 나는 워낙 뜀박질을 못한다. 그래서 운동회 때 순번 뒤에서 달리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주는게 끔찍하게 싫었다. 지금도 조깅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목이다. 아침 산책을 나가면 남편은 구령을 붙쳐 주면서 조금씩 뛰는 연습을 시키지만, 1마일도 채우지 않고 포기하고 만다. 말처럼 성실하기가 싶지 않다. 그리고 재미도 없다. 며칠전 애틀랜타 온도가 영하로 내려 갔다. 아침에 운동 복장을 차려 입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매서운 겨울 바람이 짐승 울음을 하고 지나간다. 현관문을 닫으며 나에게 속삭였다. ‘이따 해가 퍼지면 나가 뛰자’고…. 그러나 핑계는 실천을 거부했다.



요즘 마라톤 동호회에 오시는 80살 넘은 노인부부 생각이 난다. 심장병이 있어 걷기 시작하다가 몸이 점점 회복되고 건강해져 지금은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적이시다. 삶에 목표를 세우고 날마다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체험하니까 운동이 재미있고, 이 좋은 걸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후회가 막심하단다. 일요일 새벽이면 공원 트랙에서 어김없이 그 부부를 만난다. 지금 겨우 5마일을 목표로 달리는 마라톤 초보인 우리부부에게 까마득한 하프마라톤(13.1 마일 코스)은 저 노부부 때문에 도전 가능한 고지가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칼바람이 짐승 울음을 우는 스산한 날에도 그리고 또 하나, 해가 침대에 누운 나를 찾아오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양동이 목록에 하나를 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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